사진작가 백복현, 물감 풀어놓은 듯 추상적 아름다움
좀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사진작가의 눈은 카메라의 파인더다. 자연적인 ‘눈’이 아니라 인위적인 ‘눈’이란 의미다. 물론 그렇다고 전적으로 인위적인 ‘눈’에만 의존해선 작품이 창조될 수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위적인 ‘눈’을 빌려, 자연적인 ‘눈’이 지시하는대로 피사체를 그려야 한다. 자연적인 ‘눈’은 단순히 시각은 물론 청각과 후각, 미각, 촉각 등 가능한 모든 감각들이 다 동원돼야 한다. 사진작가의 오감(五感)은 그래서 팽팽하게 긴장하기 마련이다. 제작될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편리하게, 그리고 획일적으로 맞춰진 디카로 그냥 조리개만 적당하게 맞춰 셔터만 누르면 되는 게 사진이 아니라는 얘기다.
20여년을 사진에 천착해 온 백복현(63·여)의 분신들은 그렇게 탄생됐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현장을 지켜 온 작가의 놀랄만한 섬세함이 배어 있는 까닭은 자연적인 ‘눈’의 소유자(?)인 작가가 여성인 탓이다.
우선 그의 작품들은 프레임부터 틀리다. 거실 바닥을 물걸레로 훔치듯, 또는 살림을 정리하듯 작가는 피사체를 응시할 때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자른다. 그에게 있어 절단도 곧 창조의 한 과정인 셈이다. 사진은 원래 잘라내는 예술이기도 하지만, 이 대목에선 어떻게 잘라야 하느냐는 점도 중요하다. 주부가 살림을 할 때 그냥 버리는 것들은 하나도 없다. 가령 어머니들이 바느질을 할 때(물론 요즘은 옛날처럼 옷을 깁거나 훔치는 일은 거의 없지만) 허드렛 헝겊들이 있지 않은가.
가능성을 보여준 추상적 아름다움…. 평론가인 한정식 중앙대 명예교수는 작가의 분신들을 한마디로 이렇게 평가했다. 그냥 스스로 고운 것들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모래 속에서 사금을 찾아내거나, 흙 속에서 보석을 건져 내기는 힘든 법이다.
그래서 작가는 늘 겁이 난다.
/허행윤기자 heohy@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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