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라는 나침반

박진우 수원대 통계정보학과 교수·통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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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무릎을 다쳐 수술을 받은 이후 운동이 자유롭지가 않게 되었는데 그 여파로 체중이 많이 늘었다. 규칙적인 운동의 필요성은 절감하지만 과감하게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고민만 하자 몇 달 전 보다 못한 아내가 만보기 하나를 사 주었다. 내심 만보기를 지니고 다닌다고 뭐 달라질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기왕 만보기가 있으니 사용해보기로 하였다.

만보기에 나타난 나의 하루 걸음 수는 놀랍게도 3천 걸음 내외에 불과하였다. 며칠을 반복해서 관찰했으나 결과는 대동소이, 내가 얼마나 운동을 않고 살아가는지가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후 만보기에 찍힐 숫자를 의식하면서 웬만한 거리는 걸어가기 시작했고, 저녁 시간에 무료하게 보내는 대신에 가벼운 산책을 하는 등 삶에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불과 석 달 전 하루 평균 3천 걸음에 불과하였는데 만보기를 차고 다니는 요즘은 하루 평균 8천 걸음 정도를 걷게 되었으니 장족의 발전을 보인 셈이다. 내 삶에서 만보기가 끼친 영향을 생각하며 현대 사회에서 통계가 하는 역할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난 2월 하순, 통계청은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들의 사교육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전국에서 약 3만4천명의 학부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07년 우리나라 사교육비의 전체 규모는 약 20조400억원,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2만2천원으로 추정되었다.

지역별로는 서울지역이 28만4천원으로 읍·면지역에 비해 약 2.3배로 많으며, 상대적으로 성적이 높은 학생이 낮은 학생에 비해 사교육을 더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고,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사교육비를 많이 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교육 문제는 전 국민이 전문가라고 할 만큼 국민적인 관심이 지대한 영역이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는 사교육비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변변한 통계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었다. 지난 수십 년간 정부 당국은 이른바 과외 문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하기 위해 숱한 사교육비 경감대책들을 마련해왔지만 사교육비 관련 통계가 없었으니 그러한 대책들의 효과를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던 셈이었다. 심하게 말하자면 교육문제라는 낯선 산 속에서 나침반 없이 헤매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당국은 이러한 문제점을 깨닫고 그동안 부정기적인 정책연구 형식으로 파악하던 사교육비 실태를 2007년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조사하여 사교육비 실태의 변화 추이 및 정책 효과를 지속적으로 파악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뒤늦게나마 사교육비와 관련된 통계라는 나침반을 마련한 셈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회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여러 구성원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 한 집단의 행동은 다른 집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서로 이해가 엇갈리는 집단들 간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다반사이다.

통계는 이런 가운데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나침반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통계라는 유용한 나침반을 마련하지 않은 채 주먹구구식의 막연한 느낌으로 낯선 산 속을 헤매는 분야가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런 점에서 개인이든 정부든 통계숫자를 그저 낯설고 어려운 것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유용하고 친밀한 것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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