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2008년 BK21 영브레인’에 대한 시상식이 있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추진해오던 ‘두뇌한국21’ 프로젝트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인 석·박사과정 학생 중 15명을 선정해 표창한 것이다. 그런데 이 15명의 젊은 인재 중 8명이 여성이었다. 이 시상식장에 모인 ‘높으신 남성 어르신들’이 이런 현상을 두고 우려를 했다는 후문이다.
‘여풍당당’이란 말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각 분야에서 여성의 진출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각 정당의 대변인 자리는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에서 청와대에 여성 대변인을 세워 주목을 받은 지 불과 10여년만에 이렇게 변했다. 초·중등학교의 여교사 비율의 지나친 증대로 오히려 남교사 쿼터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아진 지는 오래이다. 올해 신임 판사의 여성 비율은 무려 70%에 이른다. 심지어 전통적인 남성의 영역인 사관학교과 경찰대학에서조차 수석 졸업생들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여성이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러한 현상이 우려할만한 일일까 싶다. 그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 중 절반 정도를 여성이 차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예술계 등 여초(女超) 영역과 군인 등 남초(男超) 영역이 있다. 아마 지금의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전통적으로 남초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분야에서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구분은 얼마나 타당한가?
교사, 법조인, 공무원 등에서 여성 진출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보인다. 이 사회에서 여전히 여성이 진출하기 힘든 영역이 많다. 분명 선망의 직업이긴 하지만, 남성들끼리의 네트워킹이 여전히 중요한 기업 경영 분야가 특히 그렇다. 시험을 통해 공채를 하면서, 필답고사 성적과 무관하게 남자 응시자에게 점수를 더 많이 줘 합격자의 성비를 조정하는 기업들은 매우 많다. 여성 응시자로선 매우 억울한 일이지만, 물증이 없으니 이의를 제기할 도리가 없다.
그러니 여성들은 오로지 필답고사로만 승부를 가리는 영역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필답고사가 지나치게 단순한 선발방식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공정성만은 분명하게 가려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남녀를 공정하게 뽑아줘 여성들의 사회 진출의 길을 넓혀준다면, 이런 쏠림 현상은 현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이번 ‘영브레인’은 시험에 의해 선발된 게 아니다. 논문 편수와 논문의 질 등이 모두 고려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어느 학계에서 여자 연구자를 좋아하겠는가. 교수 임용에서 남성이 유리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지도교수로부터 “난 여자 제자는 안 키운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 박사과정 입학을 포기했던 여학생들도 여럿 보았다. 30년 전 필자의 친구는 학과 1등을 차지해 학자금 전액을 지급해주는 학외(學外) 장학금 수혜자로 결정됐는데, 막상 구비서류를 모두 갖춰 장학금을 주는 단체에 가보니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장학금을 줄 수 없다고 퇴짜를 맞은 적도 있다.(결국 그 장학금은 2등을 한 남학생에게 돌아갔다.)
세상이 조금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보수적인 게 학계이다. 이런 학계에서 그 엄청난 장애를 뛰어 넘으며 여학생들이 ‘영브레인’의 절반을 차지했는데, 이를 우려하다니! 수상자 여학생들이 들었으면 분노가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게다가 특별히 육체적 강인함이나 사회적 교섭능력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학문 영역에서 도대체 왜 여성의 약진이 우려스럽단 말인가. 이러한 시대착오적 우려야말로 한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이영미 대중예술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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