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를 흰쌀로 씻어 왜군을 물리친 권율장군의 지혜가 들린다.
오산시 지곶동 162의에 있는 사적 제140호 독산성 및 세마대지(禿山城·洗馬臺址).
이 산성은, 평지에서 돌출하여 사방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남한산성과 용인의 석성산성 등과 함께 도성 방어를 위한 삼각체계를 형성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이 성은 백제가 처음 쌓고,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선조 27년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불과 4일만에 백성들이 합심하여 성벽을 새로 쌓았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세마대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선조 25년(1592) 12월에 전라도 관찰사 겸 순변사였던 권율(權慄)이 근왕병(勤王兵) 1만을 모집하여 북상하다가 이 성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그때 가토[加藤淸正]가 이끄는 왜군 수만 명이 이곳을 지나다가 이 벌거숭이산에 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 한 지게를 산 위로 올려 보내 조롱하였다. 그러자 권율은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백마(白馬)를 산 위로 끌고 가 흰쌀을 말에 끼얹으며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였다. 이를 본 왜군은 산꼭대기에서 말 씻길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고 오판하고 퇴각하였다고 한다. 이때 말을 씻었던 높은 대를 세마대(洗馬臺)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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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끝나고 이 성의 중요성이 강조되자 선조 35년 수원부사 변응성(邊應城)이 다시 성을 쌓았고, 정조 20년(1796) 화성(華城)의 축조와 함께 화성 방비를 위하여 새롭게 고쳐 쌓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벽은 외면이 장방형이나 방형의 석재로 약간 기울여 쌓아 매우 견고하다. 그러나 물이 부족하여 많은 군사가 주둔하기 어려운 것이 이 산성의 가장 큰 결점이었다.
1982년 전면 보수하여 현재 성의 전체 길이는 1.095㎞이며 성벽에는 방형의 치와 5개의 성문이 복원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조선 시대의 성벽은 삼국 시대의 성벽보다 5∼10m 안쪽에 쌓아졌음이 확인되었다. 성안에서는 백제의 토기류 및 신라와 통일신라 시대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으나 조선 시대 후기의 유물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김창우기자·자료제공 오산시
▲ 세마대 모습
▲ 세마대 재건공사 모습 (1956년)
▲ 독산성벽
▲ (위) 궐리사 전경, (아래) 오산금암동지석묘
▲ 보적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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