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여자배우이기 때문에 예쁘고 주변의 사랑을 받는 극중 배역을 은근히 탐낼 법도 하다. 그러나 황정민은 "그런 마음 별로 없는데요."라며 웃어넘긴다. 팔자 사납고 궁상맞은 아줌마 역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황정민은 사실 그런 역할로 여러 연기상을 받았다. 그가 이번에는 박복하다 못해 딸에게까지 온갖 구박을 당하고 버림받을 지경에 이른 엄마 역을 해내고 있다. '민자씨의 황금시대'(서울 대학로 예술마당2관.31일까지 연장공연)에서다.
"어떤 역할을 맡느냐가 아니구요. 주어진 역할을 어떻게 잘 해 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극중 캐릭터마다 다 문제가 있고, 갈등이 있고, 궁상맞은 면이 있고, 성격이 있잖아요. 그 역을 얼마나 잘 해낼 수 있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죠."
극단 목화(대표 오태석)의 간판배우인 황정민은 '남자충동'(조광화 작.연출)에서의 박씨 역으로 1998년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상과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온갖 구질구질한 고생은 다하며 노름꾼 남편을 뒷바라지하다 결국 집에서 뛰쳐나오는 어머니 역이었다. 두 해 뒤에는 '춘풍의 처'(오태석 작.연출)에서의 열연으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여자연기상을 탔다. 장사한다고 평양에 가 기생하고 놀아나는 남편 춘풍이를 찾아 나선 처 역으로였다.
"이번 '민자씨의 황금시대'에서의 역은 재미있어요. 처음에는 공감이 잘 안됐는데 대본을 읽다보니 저 안에도 민자 씨가 갖고 있는 면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재미도 생기고... 웃기는 민자 씨잖아요."
'민자씨의 황금시대'(김태형 작.김경익/강봉훈 연출)는 창작 초연 작품이다. 집 나간 지 10년만에 돌아온 카바레 가수 박민자(예명 허추나)와 자신을 버린 엄마를 저주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돌아온 엄마를 쫓아내려는 미아를 중심으로 황금마차 카바레 커플 남실장과 사라, 미아를 사랑하는 철수가 펼쳐내는 극이다.
황민정이 엄마 역을 맡게 된 것은 창작ㆍ초연임에도 모녀관객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으면서 이 작품이 지난달 29일 연장공연에 들어간 때부터다. 이달에는 철부지 엄마 역을 1차 공연부터 해온 양희경과 황민정이 번갈아 맡고 있다.
"(양희경)선생님이 맡은 역을 하려니 부담감이 너무 많이 느껴졌어요. 선생님은 탁~ 느낌이 엄마잖아요. 연기도 마찬가지고요. 어차피 제가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저만이 표현할 수 있는 민자 씨를 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지난 한 달간 양희경이 박민자 역을 하는 것을 딱 한 번만 봤다. 어느 정도 한 다음에 양희경이 하는 것을 보면 느낌이 달라질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극단 목화가, 또 현재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오태석 목화 대표가 자랑하는 배우다. 완전히 100%는 아니지만 그는 거의 창작극에서만 역을 맡아 연기를 해 온 배우. '춘풍의 처', '남자충동' 외에도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태', '부자유친', '새들은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는다', '분장실' 등에서 열연했다.
1994년 극단 목화에 입단한 황정민은 그간 출연했던 연극 중에서는 '춘풍의 처'에서 했던 역이 제일 좋았다고 스스로 얘기한다. 그는 2003년에는 영화 '지구를 지켜라'에서 순이로 나와 조금 모자란 듯하지만 진짜 사랑을 보여주는 연기로 2004년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독립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황정민은 오는 8월 시작되는 <연극열전2> 시리즈 중 하나 '잘자요 엄마'에서는 고수희와 함께 딸 역으로 더블캐스팅됐다. 연극열전2>
한편 '민자씨의 황금시대' 연장공연에서는 엄마에게 막말까지 해대는 딸 미아 역을 이안나, 딸을 사랑하는 시인 지망생 철수 역을 박정표가 소화해낸다. 양희경은 여전히 심이영(미아 역), 김영준(철수 역)과 호흡을 맞춘다. 황금마차 카바레 남실장 역은 최명경이, 사라 역은 윤인조가 각각 맡았다. 공연문의는 ☎02-762-9190 (사진=강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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