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을 냈으니 괜찮다’?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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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지역의 토지와 임야를 갖고 있는 경우 취득과정이 적법하다고 해도 청와대 비서관들은 고도의 청령섬이 요구된다는 점을 감안, 조건이 맞으면 가급적 조기 매각토록 했다. 자녀들에 대한 증여세 미납도 자진 납부토록 했다.”

1급 비서관 34명의 재산 등록현황을 공개한 뒤 청와대가 한 말이다.

“3천만원 이상 주식 보유자에 대해선 가급적 모두 처분토록 했고 처분 안 한 사람들은 직무 연관성에 대한 심사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임대소득 누락자는 모두 임대사업자로 등록하고 세금을 납부토록 했다”고도 밝혔다. 한 마디로 소가 웃을 노릇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무위원들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재산 공개에서 평균 재산이 각기 33억원과 35억원에 이르고 전국 각지에 숱한 부동산들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강부자’ ‘땅부자’ 정부라는 얘기를 들었다.

두 차례 재산공개에서 곤욕을 치른 나머지 1급 비서관 재산공개를 앞두고 미리 흠집을 없애려고 한 ‘사전 조치’가 옳지는 않지만 이런 지침을 받고 비서관들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괜찮다. 아무런 하자가 없음이 입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비서관은 아들, 딸에게 각각 수억원을 증여해 놓고 증여분에 대한 세금을 최근에야 납부했다. 또 다른 비서관은 2005년 연고가 없는 곳의 임야를 사서 부동산 투기를 받고 있으며, 또 장인이 딸에게 준 돈에 대한 증여세를 지난달에야 냈다.

건물이나 오피스텔을 빌려주고 세를 받고 있던 몇몇 비서관은 뒤늦게 임대사업자 등록을 했고, 어떤 비서관은 수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이들이 청와대 비서관이 되지 않았다면 증여세도 내지 않고 임대사업자 등록도 하지 않은 상태로 살았을 게 분명하다.

재산을 등록해둠으로써 재임 기간에 직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재산을 늘리는 것을 방지하고, 재산 형성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검증함으로써 도덕성과 자질을 높이는 것이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를 도입한 취지다.

하지만 이 정부는 재산 공개의 의미나 취지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명백한 잘못이 드러나도 ‘일만 잘하면 되지 도덕성이 무슨 문제냐’는 식이다.

이번에도 ‘세금을 냈으니 괜찮다’는 식이다. 정말 큰일 났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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