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燃燈)은 부처님께 자신의 마음을 밝히는 등불이다. 부처님 앞에 향을 피우는 향공양과 더불어 주요 의례인 등공양은 밝고 바른 심성을 기원, 불덕(佛德)을 찬미한다.
신라 진흥왕 12년(551년)에 시작된 팔관회(八關會)는 국가적인 연등 행사다. 태평성대를 빌었다. 팔관회는 고려 들어 더욱 성행했다. 음력 정월 대보름 전후로 궁중에서 있었다.
조선조 들어 팔관회가 폐지됐다. 초파일 연등이 생겼다. 태조 15년(1415년) 조정은 연등을 중지시켰다. 허례허식으로 낭비를 조장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태조는 원래 불교 신자다. 연등을 대신하는 수륙제(水陸齊)를 나중에 유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열었다.
팔관회는 국가적 연등행사인 데 비해 사월 초파일 연등은 민속적 연등행사랄 수 있다. 절에 가서 자신의 이름, 또는 가족의 이름으로 연등을 밝혀 단다.
‘기원정사’는 인도 중부 마갈타국 성 남쪽에 있던 절이다. 석가모니가 머물던 곳이다. 수달장자가 세웠다. 석가가 아시세왕의 초대를 받고 밤늦게 기원정사로 돌아갈 때다. 갑자기 일진광풍이 불었다. 아시세왕이 밝힌 만 개의 등이 일시에 모두 꺼졌다. 유일하게 한 여인이 바친 등만은 꺼지지 않아 석가의 발길을 밝혔다. 그 등불은 양초 살 돈이 없어 자신의 머리를 잘라 판 돈으로 밝힌 등이다. 그 무렵엔 양초가 굉장히 비쌌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절마다 연등이 넘친다. 연등을 다는 데도 꽤 많은 불전(佛錢)이 든다. 이도 돈을 많이 낸 연등은 위치가 좋은 곳에, 돈이 적은 연등은 비교적 후미진 곳에 단다. 연등을 다는 사람들도 대개는 돈을 벌게하거나 자녀의 대학 입시 등을 위한 마음에서 단다.
석가는 말했다. “깨우침이 곧 부처”라고 했다. 마음을 깨우치면 그가 누구든 상관없이 부처라는 것이다. 석가는 또 자비를 중생 제도의 길이라고 설법했다. 연등은 밝고 바른 심성의 자비로 충만할 때도 비로소 부처의 공덕이 가득해진다. 생기있는 빛을 뿜는다.
현세의 연등을 석가모니는 어떻게 볼까, 혹시 절은 세속화하고, 신심은 기복신앙화 했다고 본다면 ‘빈자의 한 등’이 없는 것을 슬퍼하실 것 같다. 이런 의문은 모든 종교가 다 한 번 돌아볼 일이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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