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過猶不及’

이 사회가 광우병으로 곧 망가지는 것 처럼 야단들이다. 방송 대담은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앙칼진 목소리로 듣는 이의 감성을 자극한다. 논리 전개의 비약 따윈 묻어버린다. 촛불시위가 대단하다. 진보언론은 연일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의 허점을 질타한다.

이명박(대통령)을 욕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석달도 안된 새 정권의 국민 신뢰도가 형편없다. ‘강부자’니 ‘고소영’이니 하는 말은 민심 이반의 신호였다. ‘부자 내각’ ‘부자 청와대’에 막연한 이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민중은 성급하다. 경제는 한두 달 새에 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데도 민중이 대통령에 대한 기대에 의문을 갖게 됐다. 경제회생을 둔 후보 때 다짐에 과장이 심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광우병의 실체가 뭔가, 우려가 실체는 아니다. 세상에 우려가 되지 않은 일은 없다. 그런데도 광우병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선전 선동이 먹히고 있다. 주로 책동하는 것은 진보세력이다. 이의 시민단체란 것이 대부분 진보성향이다. 미국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덴 반미감정이 깔린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변했다 할까, 이런 민중 정서가 광우병 선전선동으로 흔들리고 있다. 미국 쇠고기 수입을 안 해도 진짜 한우 고기 먹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젖소고기 투성이다. 이도 한우로 둔갑해 값이 여간 비싼 게 아니다. 소비자가 반에 반값으로 미국 쇠고기를 먹게 되는데도 마치 국민건강을 팔아먹은 것처럼 매도된다.

국민건강을 해치는 지도자는 없다. 국민건강을 팔아먹는 대통령도 없다. 그러나 대통령을 더 변호하는 데 한계를 느낀다. 나도 저들이 말하는 보수층인 데도 그렇다. 정부가 미국의 동물성 사료금지 조치 내용을 제대로 파악 못한 덴 정말 할 말이 없다. 동물성 사료금지 조치 ‘완화’를 ‘강화’로 안 것을 ‘실무적 실수’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하다. 대통령의 무거운 책임이다.

“광우병이 발생하면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수용한다”고 미국은 밝혔다. 대통령은 “식품안전에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한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다 괜찮은 얘기다. 그렇지만 효과는 의문이다. 그간의 수순이 틀렸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수순이 있다. 수순을 어기면 좋은 일도 망치기 십상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나왔으면 이토록 꼬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게 아니다’란 식으로 버티다가 이제와서 하는 소리엔 약발이 서기 어렵다.

기왕지사 보다 앞으로가 문제다. 대통령부터 책임을 져보여야 한다. 쇠고기 수입 개방은 원칙 문제다. 그렇다면 상응한 모종의 인책 결단을 보일 필요가 있다. 국민사회는 또 개방의 실리가 뭣인지를 아직도 구체적으로 모른다. 정부의 시책 결함이다. 무능한 소치다.

이번 기회에 이명박 스타일의 결함을 지적하고자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치명적 흠결이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 보다 못하다.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의 경위 역시 이 때문에 말이 많다. 인사도 마찬가지다. 내각이나 청와대 비서실이나 국정 수행의 탄력성 및 활성도가 빈약하다. 프로다운 면모는 조금도 없다. 노무현 정권 못지 않은 아마추어 티가 나 일 하는 것이 어설프다. 사람을 쓰는데 지나치게 자기 사람만 집착한 탓이다. 검증된 인물은 반대 세력에도, 정적 가운데도, 과거의 사람 가운데도 있다. 포용은 대통령의 최고 능력의 덕목이다.

박근혜(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내홍 관계도 그렇다. 경선의 앙금에 집착하는 지나침은 협량하다. 박근혜는 ‘이명박 필패론’을 말했다. BBK의혹 사건을 두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큰 상처를 입히고 또 입었다. 그러나 이명박은 승자다. 모든 것을 털어내는 것이 승자다운 도량이다.

깐마늘 값까지 신경쓰는 것은 자상하긴 하다. 하지만 물가관리를 이런 식으로만 한다고 해서 물가가 잡히는 건 아니다. 거시경제의 전망은 안 보이는 가운데 깐마늘만 신경쓰는 것은 좀스러워 보인다.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야당엔 물론이고 여당에 대해서도 좀 더 성숙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성숙된 정치력은 감동을 주는 예술이다. ‘과유불급’의 치유는 중용(中庸)이다. 중용은 이도저도 아닌 중간이 아니다. 지나침과 모자람, 강약과 완급, 그리고 적과 동지 등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 중용이다. 광우병 소동을 진정하는 길도 이에 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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