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마음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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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재주가 높고 빼어난 인물이 되는 것, 호걸이 되는 일은 내가 실로 바라는 바가 아니다. 다만 너희가 삼가 이 가훈을 지켜서 삼가는 선비’로 불리며 선조에게 부끄러움을 끼치지 않게 되기를 원한다.”

조선 초기의 문신 신숙주(1417~1475)가 8남1녀 자식들에게 남긴 가훈이다. 신숙주는 이 글에서 ▲조심(操心·마음을 다 잡는 것) ▲근신(謹身·몸가짐을 삼가는 것) ▲근학(謹學·부지런히 배우는 것) ▲거가(居家·집안 생활) ▲거관(居官·벼슬살이) ▲교녀(敎女·딸 교육) 등 여섯 가지 항목으로 나눠 행동지침까지 적시했다. 숙종 때 진도로 유배된 문곡 김수항(1629~1689)은 사약을 앞에 놓고도 정적(政敵)을 원망하지 않고 “집안에 독서하는 종자가 끊이지 않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영의정까지 올랐던 그는 사약을 받은 뒤 자식들에게 “벼슬길에 나아가서는 높은 요직을 멀리하라” “부지런히 여러 자식을 가르쳐라”고 당부했다. 한음 이덕형(1561~1613)은 지방 고을 원이 되어 나가는 아들에게 “너는 채 배우지도 않은 아이인데 임금의 은혜를 입어 갑작스레 주부(主簿)가 되었다. 내가 이미 나라를 저버리고 곳간을 훔쳐서는 안 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네가 또 내 음덕으로 백성의 수령이 되었다.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모두 무어라 손가락질을 하겠느냐”고 엄히 말했다.

조선 중기의 학자 김휴(1597~1638)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42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성리학을 깊이 연구했다. 그는 외아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어두운 때를 만나 정치는 혼탁하고 어지러웠다. 이에 자취를 숨길 작정으로 과거 공부도 그만두고 감히 술 마시는 것만 일삼았다. 마침내 ‘술꾼’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자, 속으로는 몸을 보전하는 좋은 계책이라 여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후회해도 소용없구나. 너는 마땅히 이를 몹시 경계하라”고 썼다. 자신은 비록 평생 술을 벗했더라도 자식은 그 술을 멀리하라고 했다. 부모들의 훈계는 잔소리처럼 들릴 정도로 시시콜콜하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게 자식 사랑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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