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쇠고기협상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끌거리고 급기야 대통령의 사과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중 하이라이트는 영어 오역 파문이 아닐까 싶다. 미국이 동물성 사료의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해놓고 오히려 완화하는 방침을 세우고 발표했는데, 그 부분을 잘못 해석하여 우리 정부는 국민들에게 미국의 동물성 사료 기준이 강화되었다고 잘못 발표를 한 것이다.
국민들은 국제통상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그까짓 영어 번역도 제대로 못해서 이렇게 심각한 상황을 만드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아마 이런 분노의 한편에는, 이 정부의 인수위 시절의 이른바 ‘어린쥐’ 사건, 즉 영어를 잘 해야 잘 살 수 있다고 영어 이외 과목까지 영어몰입교육을 하자고 했다가 국민의 질타를 받고 뒤로 물러섰던 일들의 기억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영어 중요하다고 그토록 외치더니, 결국 해놓은 일이 영어 오역이냐?” 하는 비웃음이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쇠고기협상에서의 오역 파동을 놓고, 그러니까 영어 교육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오히려 나는 이 문제가 다른 시각으로 보인다. 국제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영어실력 말고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생각해 보자.
이 문제의 핵심은 사료 강화조치의 구체적 내용을 협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히 강화하겠다는 약속만 믿고 미국측에 백지위임을 해버린 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국측의 문서를 잘못 번역하여 우리 국민에게 사료에 대한 조치가 강화될 것으로 알렸다. 국제통상 전문가들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영어 문장을 오역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이런 오역이 발생한 것은, 당연히 미국측이 동물성 사료에 관한 규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예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예단을 가지고 문장을 읽었으니 읽는 사람의 주관이 뒤섞여 오역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내 주변에는 가끔, 매 해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열심히 받던 사람이 갑자기 심각한 상태의 암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었다. 환자와 가족들은 건강검진을 한 의사들이 엉터리라고 화를 냈지만, 나는 그 역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종류의 암을 검사하는 경우에서는 발견되지 않던 것도, 증상이 나타난 이후에는 좀 더 집중적으로 세심하게 살펴보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인간의 인식은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태도나 시각의 영향을 크게 받는 법이다. 이것은 꼭 실력이 없어서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나는 이번 오역 파문은, 우리측 협상 담당자의 태도가 문제였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국측과 팽팽하게 밀고 당기면서 정밀하게 따져보는 태도가 아니라 수입 확대의 명분을 만드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면, 영어 실력이 좋더라도 이런 오역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일을 할 때에 영어 실력은 그저 유용한 수단일 뿐, 더 중요한 것은 올바른 태도와 시각이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