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국민 담화문 발표 배경과 의미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취임 후 87일만에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TV로 생중계된 대국민담화를 통해 “정부가 국민께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소홀했다“면서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제 탓”이라고 사과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대국민 사과는 ‘광우병 괴담’과 대규모 ‘촛불시위’로까지 번진 쇠고기 국면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그 배경과 의미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는 새정부 출범에서부터 각료 및 청와대 수석들의 ‘강부자’ 비판, 주요 현안을 둘러싼 당정청간 잇단 엇박자, 최근의 쇠고기 파동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지 않은데 따른 현실인식과 이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의 결과로 보인다.
또 야당과의 대화부족이 국정지지도 하락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내부 진단도 이 대통령의 사과결심을 굳히게 했다는 분석이다. 취임 100일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현재 20% 초반대로,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 초 지지도에 비해 절반 수준에도 못미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민심이반 현상을 방치할 경우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서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힘들어 질 수 있다는 우려도 배어있다는 관측에서다.
이 대통령의 사과에는 야당에 대한 ‘압박’과 ‘달래기’ 성격이 동시에 포함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이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한미 FTA가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이라며 한미 FTA의 당위성을 역설한 뒤 “농업 등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선 이미 폭넓은 지원대책을 마련해 놓았고, 필요하면 추가대책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여야를 떠나 대승적 차원에서 민생과 국익을 위해 용단을 내려 줄 것을 호소했다.
이는 17대 국회 임기가 29일로 끝이 나는데다 통합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강력 반대로 조기비준이 사실상 무산된 가운데 마지막 보루인 국민을 상대로 협조를 요청하며 ‘실낱같은’ 희망의 불씨를 살려보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18대 국회로 넘어가면 원 구성 협상과 여야 지도부 교체 등으로 정치환경이 혼란스러운 데다 모든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으면서 국회비준이 상당기간 늦춰질 수 밖에 없는 만큼 가급적 17대 국회에서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이 이 대통령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국면을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야권은 물론 여권 내부의 인적쇄신론에도 불구하고 수그러들지는 미지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담화문 발표 후 브리핑을 통해, “국정운영 전반을 책임진 자신의 책임이라고 겸허하고 진솔하게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정부가 출범한 지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는데 시기적으로 지금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각과 청와대 수석 진용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으로 안다”면서 인적쇄신론을 일축하면서 당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여권은 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통한 사과를 시작으로 5월 청와대 쇄신, 6월 5일 국회연설, 9일 국민과의 대화를 이어가며 분위기 국면 반전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미국에 대한 추가 협상을 통해 안전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광우병 파동이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과 쇠고기 수입에 따른 1차적 피해당사자인 축산농가에서는 오히려 반발기류가 그다지 크지 않은 점 등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국민여론을 들끓게 하고 정국의 최대 뇌관으로 부상했던 쇠고기 파동은 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기점으로 1차 전환점을 맞았지만 쇠고기수입 장관 고시란 또다른 고비가 남아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
/강해인기자 hikang@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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