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열전’에 나오는 고사다. 위나라 무후(武后·BC 386~371 재위)가 어느날 서하에 배를 띄우고 물결을 따라 내려가게 됐다. 서하는 협서성 황하의 서쪽 일대다.
“훌륭하다. 이 험준한 산하의 요새여! 이것이야말로 위나라의 보배로다”라고 무후는 말했다. 이에 오기(吳起)라는 신하가 임금의 말을 반박했다. “나라의 보배는 임금의 덕행이지 산하의 요새가 아닙니다”라고 했다.
간언은 이렇게 이어졌다. “옛날에 삼묘씨의 나라(호남·호북·강서성)는 산하가 험고하여 외침에 능히 방어할 수 있었으나 임금이 덕과 의를 닦지 못해 망했고, 하나라 걸왕은 제수의 물길과 태산의 험준함이 있었으나 정치가 어질지 못해 망했고, 은나라 탕왕은 사방에 준령과 대하가 있었으나 덕이 없어 망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라의 보배는 임금님의 어짊과 덕행과 의로움에 있는 것이지 어찌 산하가 험고한데 있다 하겠습니까, 지금도 만약 임금님이 덕을 닦지 아니하면 이 배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적이 될 것입니다”라고 간언했다. 무후는 크게 뉘우치면서 “참으로 옳은 말이로다”라고 했다.
사마천은 산하의 자연적 요새를 인간이 타고난 재주에 비유해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무릇 재주와 덕행을 겸비해야 유능하다고 하나, 둘 가운데 하나라면 덕행이라고 했다. 범부도 이럴진데 하물며 치자의 덕목은 덕행이 으뜸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임금이 재주가 좀 모자란 것은 신하의 재주를 빌릴 수 있으나, 몸소 행해야 하는 임금의 덕행은 빌릴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만이 아니다. 재주가 지나쳐 덕을 넘어서면 ‘재승덕박’(才勝德薄)하여 부리는 재주가 되레 이롭지 못하다고도 했다.
재주는 있으나 경박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재승덕한 사람’이란 말이 이래서 있다. 재주는 사람을 놀라겐 할 수 있어도 사람에게 감동을 주진 못한다. 인간사에서 감동을 주는 것은 곧 덕이다. 공자가 정치를 ‘바를 정’(正)으로 보고 이는 인덕(仁德)·인의(仁義)에서 비롯된다고 설파한 이유가 이에 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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