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아가야, 넌 이 세상을 대충대충 살아야 한다"
왕년의 인기 가수 태수(김상중)는 어쩌다 자기집에 함께 살게 된 갓난아이에게 '대충'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세상을 대충 살라는 '덕담'을 한다.
'대충'이라는 이름은 엉성해 보이는 이 집안에서 그다지 특이한 이름이 아니다. 태수의 중학생 아들 이름은 건성(김흥수). 아마도 매사에 건성건성 살아보자는 아버지의 의도가 들어갔을 테니 이 집안의 가훈은 '대충대충 건성건성 세상을 살자'쯤 되는 듯하다.
왕년에는 잘나갔지만 태수는 대마초에서부터 '뽕', 엑스터시에 본드까지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의 적용 대상 마약류를 폭넓게 섭렵하고 있는 '뽕쟁이'다.
교도소를 들락날락거리는 아버지에 비해 아들 건성은 철이 일찍 들었다. 부모 없이 혼자 자랐지만 '나라가 반대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모범생에 로커라는 나름 번듯한 꿈도 있다.
이무영 감독의 신작 '아버지와 마리와 나' 속의 인물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살고 있는 루저(패배자) 혹은 마이너리티다.
영화 속의 '나'인 건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렇다. 마약쟁이에 미혼모, 동성애자, 왕따 등 건성의 주변 사람들은 경쟁이 최고의 미덕인 자본주의 세상의 낙오자들이다.
이들의 낙오에는 자발적인 의지가 상당부분 들어가 있는 듯하니 땀흘리며 저만치 가고 있는 거북이의 뒤에서 귀를 후비며 낮잠을 자는 토끼 같은 존재들인 셈이다.
영화는 태수와 건성의 갈등을 축으로 왜 태수가 루저가 됐는지 보여준다.
포크 밴드 '배태수와 풀잎들'(풀잎은 대마초와 진짜 풀잎의 중의적인 표현이다)의 리더로 활동하던 태수는 15년 전 자신의 눈 앞에서 사랑하는 아내가 투신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아내는 그의 노래 '태양처녀'에도 등장한다. 태수의 인생에 태양 같은 처녀였던 셈이니 태양을 잃은 그의 얼굴에 그늘이 질 수 밖에 없다. 이 태양처녀는 그가 마리화나를 필 때에만 다시 나타난다. 마리화나가 태수에게는 일종의 구원인 셈이다.
이런 태수와 건성의 삶에 전환이 되는 사건은 엉뚱한 미혼모 마리(유인영)의 등장이다. 길에서 만나 다짜고짜 이들의 집에 찾아와 눌러 앉은 마리는 아기와 함께 부자의 새로운 가족이 된다.
마약과 동성애, 미혼모 등 민감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화면은 자극적이기 보다는 포근하다. 인물들의 상황은 더 나아질 게 없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마음이 아름답다.
그래서 영화는 삶의 경쟁에 지친 관객들이 쉬었다 갈 만한 '착한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줄거리가 예측 가능하며 높낮이 없이 잔잔히 흘러가는 착한 영화의 전형적인 단점도 가지고 있다.
'짝패'(류승완),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박찬욱), '그녀는 예뻤다'(최익환)와 함께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하는 HD디지털장편영화 프로젝트 중 1편. 영화 제목 중 '마리와 나'에는 발음이 비슷한 '마리화나'와 이중적인 의미를 갖도록 하는 감독의 의도가 담겨 있다.
12일 개봉. 관람등급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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