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하는 국악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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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8일 전남 광양에서 열린 국악대축제 ‘국악난장’은 세대와 관련해 매우 뜻 깊은 행사였다. 광양제철소라는 든든한 후원에 힘입은 이 행사에는 국악 각 장르의 내로라하는 명인들이 나와 판소리, 경기민요, 가야금, 해금연주 그리고 근래 새 경향인 퓨전국악의 진수를 선사했다. 또한 하루 전 17일에 있었던 ‘대학국악제’는 국악계 미래의 주인공을 발굴한다는 취지에서 처음 마련되어 국악 관계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대회 주최측은 ‘대학국악제’를 ‘대학가요제’에 버금가는 영향력 있는 연례행사로 만들겠다는 의욕을 밝혔다. 행사장을 찾은 관객들은 젊은 국악과 학생들의 아기자기한 실험에도 놀랐고 ‘국악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사실에도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이날 축제는 국악 자체로도 재미있으며 동시에 다른 음악과 결합해 얼마든지 갖가지 소리풍경을 만들어낸다는 가능성을 새삼 확인해주었다.

다음날 국악난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의 자리였다. 관객들은 김영동 지휘의 경기도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는 물론, 명창 안숙선의 판소리, 이춘희의 경기민요, 황병기의 가야금 연주, 해금의 스타 강은일의 연주에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공연을 참관한 국악 관계자들의 표정은 흐뭇했다. 우선은 행사가 매끄럽게 진행되고 예상 밖으로 많은 관객들이 찾아 열띤 호응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만족했을 것이다.

그보다 더 기뻤던 것은 관객들의 세대분포였다. 기업의 문화후원에 따른 무료관람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전남 드래곤즈 전용구장의 행사장에는 국악을 경험한 노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국악보다는 가요가 더 좋은 중·고교 학생들도 대거 참여했으며 아빠의 무동을 탄 어린이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행사의 캐치프레이즈인 남녀노소의 가족행사로서 조금의 손색이 없었다.

엄마의 설명을 차분히 듣는 아이도 있었지만 아직 국악의 맛을 모를 태반의 아이들은 당연히 자리에 앉아 있지를 않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공연을 관람했다고는 할 수 없는 노릇. 하지만 국악인들의 설명은 달랐다. “저렇게 왔다 갔다 하니 국악을 듣지 않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은연중에 국악의 향기가 아이의 몸에 전달돼요. 현장에 온 아이와 오지 않은 아이는 나중 커서 천양지차를 보이게 됩니다. 어릴 적에 한 번 들으면 어른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국악을 찾게 된다는 거죠.”

사실이 그랬다. 어렸을 적에 가요나 팝에 이끌린 지금의 40대와 50대들은 국악을 지루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음악으로 여기는 세대들이다. TV에 방영되는 국악프로는 심야나 시청률이 낮은 시간에 배치되어 있고, 막상 보게 되더라도 왠지 고리타분하다. 그러나 이날, 단 한번 제대로 된 국악 프로를 본 적이 없다는 한 40대 관객은 “어릴 때는 그렇게 고루하게 들린 경기민요가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인지 처음 알았다”고 감격에 젖은 소감을 밝혔다.

광양시민이 부러웠다. 서울과 경기 사람들이 국악에 관한 한 오히려 소외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아이들을 동반할 마땅한 국악축제가 서울에는 별로 없다. 서울의 아이들은 거의 국악을 접하지 못한다. 광양 국악난장과 같은 국악한마당이 서울에서도 자주 열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국악의 대물림이 이뤄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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