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범수는 2003년 겨울에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흘러나왔던 곡 ‘보고 싶다’의 주인공이다. 그 이전 ‘헬로 굿바이 헬로’라는 노래로 빌보드 세일즈 차트 51위에 올라 국내 최초로 빌보드 입성의 신기원을 이룩한 가수도 그다. 2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현재 컴백을 위한 앨범 작업에 한창이다. 그가 부재한 2년 동안 과연 우리 음악계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디지털시장으로 전환해 덩치는 커졌다지만 불법 다운로딩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으며 IT산업의 우울한 그늘이 된 음악계라서 당연히 좋은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의 지적은 훨씬 더 뜨끔했다. 한마디로 지금 음악계는 비겁하다는 것이다. 어려운 시장을 타개하려는 노력으로 알짜 곡이 나오고 다양한 음악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김범수는 디지털 싱글이라는 것도 어차피 앨범시장도 죽었고,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 때우려는 것에 불과한 비겁한 접근이라고 주장했다.
가수들이 떼 지어 연기자로 변신하고 있는 현실도 안타깝다고 했다. 가수라고 연기를 하지말라는 법은 없지만 음악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몰려가는 일종의 도피라는 것이다. “당장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되겠지요. 하지만 저는 음악이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비록 지금은 어렵지만 음악이 다시 위대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음악이 다시 위대해질 때 연기로 전환한 가수들에게 그 경력은 굉장히 부끄러운 과거로 남을 것 같아요.”
김범수의 말은 많은 음악계 종사자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음악계 사람들은 지금의 대중가요가 아무리 형편없어도 언젠가는 다시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음반이 팔리지 않아도, 돌아오는 결과가 신통치 않아도 음악에 매진하는 가수와 제작자가 아직도 많은 것은 음악이 다시 위대해질 것이라는 희망이 한쪽 가슴에 둥지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를 따라가느라 디지털 싱글 출시가 줄을 잇고 있지만 앨범 발표가 줄었느냐면 결코 그렇지 않다. 한 방송국의 라디오 프로듀서는 과거 전성기 때보다 더 많은 앨범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반판매량이 갈수록 하락하는데도 앨범 출시가 끊이지 않는 것을 시대착오로 보는 시각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이처럼 ‘구시대 방식’인 앨범을 고집하는 데는 허황된 대박의 꿈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관계자들도 있다. 한심하고 미련하다는 것이다. 이 역시 잘못 본 거라고 말할 순 없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시대착오적 접근으로 풀이하는 것은 곤란하다. 거기에는 아직 숨 쉬고 있는 음악에 대한 본연의 애정이 존재한다.
가수 이승철은 말한다. “음반을 내봤자 안 팔린다는 걸 우리가 왜 모르겠어요? 아마 다들 바보짓이라고 할 겁니다. 그럼 음악을 하는 사람이 음악시장이 안된다고 그만둡니까? 음악이 좋아서 이쪽에 온 거니까 당연히 앨범은 만들어야죠. 팔리든 안 팔리든 잘 만들어야죠. 디지털 싱글에도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는 음악은 중독성이 압도하는 예술이라고 했다.
어려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음악계가 지켜야 할 기본은 좋은 음악, 가슴을 울리는 감동의 음악을 만든다는 소박한 자세다. 이런 기본이 없는 게 음악시장이 악화되는 것보다 더 절망적이다. 음악이 다시 위대해지기 위한 방법은 말할 것도 없이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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