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촌철살인’의 단평으로 소문났다.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헌을 전제로 임기 단축 얘기를 꺼냈을 때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일갈로 대통령의 말을 잠재웠다. 테러의 병상에서 깨어난 첫마디 “대전은요?” 한 마디가 열세에 몰렸던 대전시장의 지방선거 판세를 뒤집었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시 경선 규정 개정을 반대하면서는 “차라리 내가 1000표를 드리겠다”고 했다.

박 전 대표의 ‘어록집’이 출판됐다. 핵심 측근인 이정현 의원이 펴냈다. 지난 4년동안 언론에 보도된 발언을 모아 정리했다고 한다.

그런데 박 전 대표는 미국 쇠고기 수입을 둔 촛불집회 때 그답지 않은 말을 했다. 오랜 침묵을 깨고 한 말은 “과격시위도 나쁘지만, 과잉진압도 나빴다”는 것이다. 양비론이나 양시론은 평소의 명쾌한 어법과는 영 딴판이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민중투쟁전선 구축, 이러한 투쟁이 미국과 친미보수세력에 대한 분노와 투쟁으로 지향되도록 이끌어 간다’ ‘진정한 목표는 이명박 정부를 주저 앉히는 것으로… 사회를 마비시켜야…’ ‘노동자파업, 학생농활, 농민 공동투쟁 등을 고려해 집중투쟁 배치하는 것이 필요…’

이상은 경찰이 공개한 진보연대와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압수문건 내용 중 일부다. 이들이 벌인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불법집회의 배경이 뭔가를 드러내 보인다. 국민건강권 등을 내세우며 재협상을 요구한 것은 불법집회의 구실에 불과한 것이다.

박 전 대표가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주도한 불법집회의 배경을 일찍이 간파치 못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양비론을 편 것은, 한 마디 안 할 수 없는 처지에서 마지못해 한 소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긴, 지도급 인사들 중엔 국난과 같은 폭력시위를 보고도 입을 다문 채 방관만 한 사람들도 있었다. 기회주의적 처신인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박근혜·이명박 사이의 앙금은 아직도 그토록 두텁게 남아 있는지, 정치란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박 전 대표는 지금 싱가포르 정부의 초청으로 그곳에 가 있다.

/임양은 주필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