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받는 노인 열 명 중 아홉 명이 가족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노인 학대 가해자는 아들(53.1%)이 가장 많고, 며느리·딸·배우자 순으로 가족 학대가 90%를 넘는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발표한 ‘2007년 노인학대 실태 분석 결과’에 나타난 한국 가정의 참담한 실상이다.
86세의 한 할아버지는 수도·전기·가스가 끊긴 집에서 혼자 살며 시름시름 앓다 둘째 딸에게 발견됐다. 몸도 추스리지 못하는 아버지를 아들과 며느리가 재개발 아파트에 방치한 것을 딸들이 뒤늦게 안 뒤였다. 아들과 두 딸은 재산과 아버지 부양 문제로 관계가 나빠져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중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수시로 “나가 죽어라” “밥값도 못한다” 같은 폭언을 퍼부었다. 며느리도 식사를 제 때 챙겨주지 않고 무시해 할아버지에게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혔다.
82세의 어떤 할머니도 죽지 못해 사는 형편이다. 아들 부부가 이혼해 손수 키운 손자가 “돈을 내놓으라”고 시도 때도 없이 고함을 질러 무섭기 짝이 없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손자는 할머니를 협박해 돈을 빼앗아가고 집안의 가전제품을 가져다 팔거나 몰래 통장을 훔쳐가기도 했다. 정부가 주는 기초생활수급비로 근근히 살아가는 할머니는 견디다 못해 인근 노인보호전문기관을 찾았다. 보호센터에서 사흘간 마음을 진정시키고 겨우 집에 돌아왔지만 손자가 또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밥도 먹기 싫어졌다. 이혼한 아들 부부는 소식이 끊긴 지 십년이 넘었다.
2007년 18개 노인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노인학대 신고는 4천730건으로 2006년보다 18.4% 증가했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노인이 노인을 학대하는 ‘노(老)-노(老) 학대’도 32.2%나 늘었다. 60대 아들이 80, 90대 부모를 학대하는 경우다. 자기 인생의 한치 앞을 모르는 불효가 아닐 수 없다. 괴롭힘을 당해도 자식들의 체면을 생각해 참고 견디는 경우를 더하면 실제 학대 행위는 훨씬 많을 것으로 능히 추정된다. 노인들이 자식들에게 학대 받는 세태를 보면 말세가 따로 없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는 성경 구절이 새삼스럽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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