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혼을 세계의 지붕이자 7대륙 최고봉에 심는다’ 모토 도전 사가르마타의 여신을 향한 본격적인 ‘지옥의 카라반’ 시작
“난원정 갈려고 사표까지 냈는데…. 반드시 세계 최고봉에 태극기를 꽂아야 한다고!”, “원정간다고 하니까 10살된 딸 아이가 ‘아빠 미워’라며 말도 하지 않더라구요.”
3월27일 오후 9시30분 타이항공 XXX편 네팔 카트만두행 비행기를 탔을 때만 해도 우리들은 (몇몇 대원들은 대상에서 제외) 앞으로 펼쳐질 70여일 동안의 험난한 여정을 예상하지 못했다. 특히 좀처럼 볼 수 없는 대규모 원정대(총인원 18명)를 꾸리다보니 8천m급 고산 등반이 처음인 대원이 본 기자를 포함해 8명이나 됐다. 그렇다보니 히말라야가 안겨줄 고통이 무엇인 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우리 대원들은 다른 여행객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보다 더 심하다’는 남자들만의 수다에 열을 올리며 마치 장기 여행을 떠나는 휴가자처럼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경기산악연맹 창립후 ‘경기혼을 세계의 지붕이자 7대륙 최고봉에 심는다’는 모토 아래 처음으로 꾸려진 ‘2008 에베레스트·로체 원정대(단장 최원식)’는 원정 출발 3일전까지도 히말라야에 간다는 확신을 할 수 없을 만큼 불투명한 상태였다. 중국 정부가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앞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성화를 봉송한다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중국 정부의 압력을 받은 네팔 정부가 등반을 통제할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졌고 자칫 원정 자체가 무기한 연기될 수도 있었기에 원정을 떠난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대원들은 그렇게도 어린 아이처럼 기뻐했는 지 모르겠다.
5시간여의 야간 비행 끝에 경유지 방콕에 도착한 대원들은 현지 에이전시가 마련한 숙소에서 하루를 체류한 뒤 재일교포 산악인 정의철 대원과 공항에서 합류, 곧장 카트만두로 향했다. 사가르마타의 여신(에베레스트를 표현하는 네팔어)을 만난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연이은 비행에도 불구하고 해발 1천300m에 위치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한 대원들의 표정은 피곤한 기색없이 한결같이 모두 밝았다.
하지만 재래식 공항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낙후된 카트만두 공항의 느린 행정절차로 2시간 가량 무더운 날씨에 노출된 대원들은 녹초가 됐고, 또 다시 1시간여가 흘렀을까? 이윽고 대원들이 어렵게 공항을 빠져 나왔고, 현지 에이전시 사람들과 앞으로 있을 등반의 가이드가 되어줄 사다 옹추를 비롯한 셀파들이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6t 가까이 되는 짐과 함께 우리는 대형 버스에 몸을 실은 채 숙소인 안나푸르나 호텔로 향했을 때만 해도 모든 계획이 일정대로 진행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네팔 관광성이 등반 통제를 놓고 마라톤 회의를 거듭하면서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등반 허가를 내주지 않아 무작정 입산허가를 기다려야 하는 것도 문제였고, 카라반의 첫 대상지인 루크라(해발 2천800m)로 6t의 짐을 옮기는 것도 예상했던 것보다 쉽지 않았다.(기상이변이 심해 15인승 경비행기가 오전에만 운행하기 때문) ‘중국이 성화 봉송을 끝내기 전까지는 캠프2 이상을 등반할 수 없다’는 조건부 허가를 받는 등 무거운 마음으로 루크라로 향했던 때는 일정보다도 4일이 늦어졌고, 한국을 떠난 지도 이미 1주일이 지난 4월3일. 그래도 대원들은 ‘신의 영역인 에베레스트로 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 지 모두 밝은 표정이었지만 루크라에 도착하면서부터 크고 작은 문제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img5,C,000}기록을 담당하는 김덕진 대원이 카라반을 시작하기 전부터 고소증상에 시달려 고통을 호소했고, 각국 원정대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야크와 포터들의 일당이 경쟁적으로 올라 예상했던 것보다 비싼 운송료를 줘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세계 최고봉으로 향한다’는 목표가 확실했던 우리였기에 모든 정비를 마친 뒤 70여 마리의 야크와 10여명의 포터들과 함께 히말라야 땅에서 대장관을 연출하며 사가르마타의 여신을 향한 본격적인 ‘지옥의 카라반’을 시작했다.
/김규태기자 kkt@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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