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에 참전한 간호장교 다이앤피클 플래퍼트(47세)는 2003년 이라크 힐라지역에서 임무 수행 중 동료부대원들과 잠시 떨어졌을 때 이라크 남성들에게 집단성폭행 당했지만 곧 바로 상부에 보고하지 못했다. 임무를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함께 보고가 제대로 받아들여질지도 의문스러웠기 때문이다. 공황 장애 속에 이혼의 아픔까지 겪은 그녀는 결국 6개월만에야 재향군인청(VDA)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재활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한다.
이라크전에 참전, 정보수집 활동을 벌인 캐롤린 섀퍼(35세) 역시 남성대원들이 숙영지에 여성의 나체 사진을 붙여놓는가 하면 불쑥불쑥 방으로 난입하는 등 성희롱 피해를 입었지만 전출될 우려 때문에 상부에 정식 보고하지 않았다. 섀퍼는 “군 정보활동 특성상 정보 수집을 꾸준히 해 왔던 사람이 갑자기 전출되면 그동안 성과를 거둔 일 뿐 아니라 부대 자체도 망가질 수 있다”며 “난 전출을 원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일종의 형벌을 받으며 지내야만 했다”고 말했다.
미국 여군은 전쟁터에서 성폭행과 성희롱이라는 또 다른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여군만 19만명이 넘는 상황을 고려하면 성폭행 및 성희롱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은 시급하다.
미국 재향군인청에 따르면 이라크와 아프간전에 참전했던 여군 전역자 중 15%는 성폭행이나 성희롱 때문에 우울증, 불안, 가정폭력 등 각종 외상장애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군의 20% 가량이 원하지 않는 성적 접촉을 당했다는데 신고되지 않은 사례까지 더하면 실제 피해사례는 이보다 더욱 많을 게 자명하다. 군 내 성폭행 발생률이 일반 사회 발생률보다 더 높은지 여부를 나타내는 통계는 없지만 1991년 걸프만 전역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평시보다 전시 때 성폭행 비율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문제는 남성들이 성희롱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점이다. 성폭행보다 경미한 행위일 순 있지만 성희롱 역시 상대방에게 심각한 충격을 주는 행위다. 한국 여군들이 미군 여군 같은 피해를 당하진 않을 것으로 믿는다.
/ 임병호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