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백자기라는 사람이 상구라는 지역에 가서 큰 나무를 보았다. 나무가 얼마나 큰 지 수레 수천대를 묶어 놓아도 그 나무가 만든 그늘 안에 들어갈 정도였다. 그런데 그 나무는 구불구불하여 집 짓는 재목으로 쓰기에 힘들었다. 밑동은 속이 텅 비어 관이나 널로도 쓸 수 없었다. 나뭇잎에 혀를 대면 너무 독해 혀가 문드러질 정도였고, 냄새를 맡으면 정신을 잃게 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쓸모 없는 나무를 보며 남백자기가 말했다. “이 나무는 재목이 될 수 없는 쓸모 없는 나무로구나 (此果不材之木也). 그러나 그 쓸모 없음이 이 나무를 이렇게 큰 나무로 자라게 한 것이다 (以至於此其大也)”
<장자> ‘인간세’편에 나오는 우화다. 일명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장자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다. 우리가 무용하다고 생각하는 것 속에 위대한 유용이 들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등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와 비슷하다. 장자>
쓸모 없음과 쓸모 있음의 경계를 허무는 이 무용지용의 철학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는 사고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노장(老莊) 철학의 화두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쓸모 없는 나무였기에 그 나무는 크게 자라 유용성 있는 나무가 될 수 있었다.
반대 우화도 있다. “송나라의 형씨라는 지역은 나무가 자라기에 아주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무들이 한줌 되는 크기로 자라면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원숭이를 묶어 놓을 말뚝으로 쓰기 위해 베어가고, 한 두 아름되는 크기로 자라면 집의 마루로 쓰기 위해 베어 간다. 일곱 여덟 아름쯤 크면 그땐 부잣집에서 그들의 관을 짜기 위해 베어간다. 형씨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너무나 유용했기 때문에 결국 큰 나무로 자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상식으로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국 유용지무용(有用之無用)한 이야기다.
유용한 나무는 너무 쓸모가 많아 크게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위대한 창의력을 발휘한 사람이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사람들은 일반인의 상식을 뒤엎는 생각을 해본 사람들이다. 우리 세상엔 이런 삶이 적지 않다. 예컨대 불모지와 다름 없던 바닷가 모랫벌에 건설한 ‘포스코(포항제철)’도 좋은 사례 중 하나로 회자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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