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통행금지 시간이 있었다.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다. 방범의 효과를 위해서보단 오열(五列)분자의 준동을 막기 위해서였다. 오열이란 스페인 내란시 프랑크 장군이 4개 부대를 이끌고 마드리드를 공격하면서 시내에도 자신에게 내응하는 제5부대가 있다고 한 데서 유래된다. 즉 적과 내통한 세력으로 간첩과 유사하다.
1948년 건국 이후 실시된 야간통행금지 시간이 폐지된 것은 33년만인 1981년이다. 밤문화가 성업을 이루기 시작한 게 이때 부터다. 그 전엔 밤문화는 커녕 야간통행금지 시간에 걸리면 경찰서 유치장에 끌려가 법원의 즉결재판을 받아야 했다.
텔레비전방송의 흑백 화면이 컬러로 바뀐 것도 이 무렵이다. 중고등 학생의 복장도 자율화됐다. 프로야구를 만들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유치한 것도 이 때다. 전두환 육군소장이 이끈 신군부가 집권했을 적의 일이다.
당시 신군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상임위 중심에서 5공화국으로 이어 정권을 장악했으나 정통성의 취약점을 무마키 위해 선심정책을 쓴 것이 통금 폐지, 복장 자율화, 컬러방송 등이다. 컬러방송은 미처 준비가 안 된 상태인데도 방송사를 윽박질러 앞당겼다.
프로야구도 각 재벌기업에 구단 창설을 강제로 떠 맡겨 처음엔 ‘울며 겨자먹기’로 시작된 것이 프로야구 탄생의 이면사다. 서울 올림픽 유치는 5공 정권의 명운을 걸고 혼신의 힘을 쏟았던 결과다. 실제로 프로야구는 특히 젊은층을 비롯한 사회적 불만의 기운을 많이 흡수해 희석시켰다. 매사에 언필칭 내세운 서울 올림픽대회 준비는 정권 유지의 중심 축 역할을 했다.
제29회 베이징 올림픽대회가 어제 폐막됐다. 텔레비전방송 중계가 인기를 끌었다. 많은 시청자들이 감격, 환희, 아쉬움 등을 맛봤다. 온 국민이 하나가 됐다. 이런 저런 시름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보름 이상을 이렇게 보냈다.
이명박 정부가 방어적 국정 운영에서 공격적 운영으로 전환했다. 베이징 올림픽에 국민의 눈이 쏠린 게 전환의 틈새가 됐다. 베이징 올림픽 특수로 누구보다 덕을 단단히 본 것이 이명박 정부인 것이다. 다 좋다. 국정의 공격적 운영도 좋다. 문제는 나라 살림을 살림답게 얼마나 잘 꾸려가느냐에 있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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