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뿔 날만 하다

‘동네 북’이 아닌 ‘나라안 북’ 신세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처지가 이렇다. 보고 있자니 안좋다. 우리네끼리야 으례 ‘김문수 북’을 친다. 우리의 도지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들이 치는 것은 싫다. 우리의 도지사이기 때문이다.

그야 맞을 일이면 또 모르겠다. 맞을 일 같으면 싫어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아니다. 말 뜻을 새길 생각은 없이 말씨만 갖고 시비를 건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란 사람부터가 그렇다. 박희태의 이른바 경고 메시지는 또 정당의 지방자치 침해의 우려를 현실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욱 황당한 것은 차기 대권 행보로 보는 시각이다.

김 지사가 대권에 뜻을 둔다는 말은 일언반구도 듣지 못했다. 물론 속내는 있어도 비칠 입장은 아직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접어두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가 대통령감이 되는지 안되는 지엔 관심이 없다. 분명한 것은 정작 본인은 그런 눈치도 보이지 않는 터에 대권 행보로 각색하는 건 황당하다는 사실이다. 그의 수도권 규제 철폐의 지속적인 노력은 나라를 걱정하는 충정이다. 대권설 각색은 그런 위국충정의 순수성을 되레 흠집낸다.

앞서 말씨만 갖고 시비를 건다고 했는데 말씨도 그렇다. 나도 거친 언어 구사는 공연히 비수도권의 더 큰 반발을 불러 일으킨다고 나무란 바가 있다. 거친 표현을 잘 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이 기왕지사 이렇게 됐으면 한번 따질 필요는 있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당선은 어느 지역보다 앞선 수도권의 압도적인 지지표가 크게 기여했다. 이 후보는 그땐 수도권 규제 완화를 공언했다.

한데, 돌연 전 정권의 노무현을 사부로 하는 지방균형발전을 계승하면서 수도권 규제 완화의 공언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김문수는 이를 “배은망덕”이라고 했다. 말인즉슨 틀린 말이 아니다. 이명박은 그같은 말을 들을 만하다. 자신의 공언을 뒤집어 놓고, 그같은 포퓰리즘 영합의 정치적 훼절에 해명 한마디가 아직껏 없다. 하긴, 말을 해도 경제논리로는 설명이 안될터이니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중국이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으로 경제대국을 내다보는, 오늘의 성장을 이룬 것은 잘 아는 사실이다. 쥐만 잘 잡으면 고양이가 검든 희든 상관이 없는 것처럼, 성장에 도움이 되면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지금도 여전한 중국의 경제기조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의 독재체제인 것이 또 중국이다. 주목되는 것은 공산당의 균배론을 폐기한 점이다. 균배론은 결국 하향평준화로, 사람답게 사는 방법이 아님을 뼈저리게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원조로 하고 이명박을 중시조로 하는 지방균형발전론은 균배론과 맥락이 같다. 수도권의 성장동력을 잠재워 지방균형발전을 고루 이룬다는 명제는 가설도 못되는 포퓰리즘의 허구다. 수도권에서 시작된 경제성장은 수도권만 누리는 것은 아니다. 나라안 전지역에 두루 미친다. 이런데도 수도권의 숨통을 눌러놔야 비수도권이 잘 된다니 기가 치밀다 못해 막히는 것은 당연하다. 명색이 자유경제의 자본주의 나라에서 공산당 나라인 중국에서도 안하는 지역주의 규제를 일삼는 것은 시대의 역행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이를 “공산당”을 빗대어 비판한 것은 맞는 말이다.

한국은행은 이미 가계금융의 위기 수준을 경고했다. 금융권의 가계부채가 640조원이다. 은행빚 안지고 사는 가구가 별로 없다. 그런데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도 못내는 가구가 올들어 지난해 보다 배가 더 된다는 것이 금융권의 얘기다. 한결같이 “큰 일이다”라며 걱정이 태산이다. 독촉하면 전에는 미안해 하던 채무자들이 이젠 “멋대로 하라”며 배째라는 식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경제가 죽어가는 탓이다. 담보물을 공매에 부쳐도 넘쳐나는 매물로 원금 회수가 안된다. 가계금융의 불안이 IMF 환란보다 치명적인 금융권 파탄의 위기 수준으로 치닫는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태평하다. ‘주인이 배 부르면 머슴 배 곯는 줄 모른다’는 말과 같다.

청와대가 얼마전에 갖기로 했던 재벌 총수들의 초청 회동을 추석후로 연기한 것은 투자 보따리를 싸들고 오라는 압박 신호다. 재벌 총수들에 대한 특사를 욕 먹으면서 해줬는데, 무슨 보답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재계에 준비된 투자 자금이 없는 것은 아니다. 50조원 가량이나 있긴 있다. 그러나 기업 투자는 경제행위다. 자선사업이 아니다. 이문은 커녕 손해가 날 투자를 할 기업은 없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기업 투자의 물꼬를 터주면 재벌 총수들은 굳이 청와대로 부르지 않아도 절로 투자한다. 수도권 기업 규제의 철폐가 곧 투자의 물꼬를 터주는 것이다. 지방균형발전은 지역특화산업의 육성으로 모색돼야 한다. 수도권에 있는 공장을 비수도권 여기 저기에 옮기는 물리력이 균형발전인 것은 아니다. 비수도권에 억지로 옮기고, 어거지로 투자하라고 한다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노무현 정권 5년동안 외국자본도 수도권에 투자하려다가 못하면 비수도권에 간 것이 아니고 제3국으로 가곤 했다.

서민층 가계는 금융권을 파탄낼 정도로 급격히 악화되는 판에 50조원 상당의 기업 투자를 이 정부는 한가하게 수도권, 비수도권의 이분법적 정치논리로 가로막고 있으니, 김문수 도지사가 뿔이 날대로 날 수밖에 없다. 뿔이 안난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김문수의 말씨에 대한 비난은 사안의 실체적 접근이 아니다. 말 뜻에 대한 접근이 본질이며 이는 그의 확실한 소신일 것이다.

김문수, 뿔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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