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승무’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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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파르라니 깎은 머리 / 박사(薄紗) 고갈에 감추오고 //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 없이 녹는 밤에 /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 먼 하늘 한 개 별빛이 모두오고 //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이냥하고 //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조지훈(趙芝薰) 詩 ‘승무’

승무(僧舞)를 통한 한국적 고전미를 노래한 이 시는 조지훈의 초기 시 대표작이다. 사라져가는 민족정서에 대한 아쉬움이 그대로 표출돼 있다. 승무를 추는 배경이 먼저 설정되고 다음으로 승무가 진행되는 순서에 따라 동작이 변화돼 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특히 승무의 동작에 비례하여 그 어조와 정서가 상승되고 있다.

‘승무’에서의 기법상 두드러진 특성은 우선 시어의 세심한 선택과 감탄형 종결어미의 적절한 사용이다. ‘하이얀 고깔’ ‘파르라니 깎은 머리’ ‘복사꽃 고운 뺨’ 등과 ‘나빌레라’ ‘서러워라’ ‘별빛이라’ 등이 구체적인 예인데, 관습적인 기교로 전락하지 않고 개성적인 표현으로 부각됐다.

율격도 처음부터 급박하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극적으로 차차 변화돼 가는 승무의 과정과 잘 어울린다.

작중 화자의 태도가 완성자적(玩賞者的) 관점 혹은 관조적 거리를 적절하게 유지하고 있는 점도 특징 중의 하나다. 지나친 거리 조정이나 영탄은 피하면서 간간이 감탄과 탄성을 발해 시의 묘미를 더 한다.

10월 4일 정조대왕 탄신 265주기를 맞아 한국의 대표적 사찰 화성 용주사에서 열리는 ‘승무제’에선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8호 승무살풀이 기능보유자 김복련 선생이 ‘승무’를 펼치고 진순분 시인이 조지훈 선생의 시 ‘승무’를 낭송, 승무의 예술성을 재창조한다.

많은 시민들의 관람을 권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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