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스포츠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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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이 체육교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90년이었다. 양측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축구대회를 벌여 1946년을 끝으로 중단됐던 경·평축구대회를 44년 만에 부활시키고,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처음으로 남북한 단일팀을 출전시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잠잠하던 남북체육교류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 ‘공동입장’함으로써 물꼬를 텄다.

시드니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한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등 총 9차례에 걸쳐 국제종합대회 공동입장을 성사시켰다. 남북한이 따로 입장하면 오히려 이상할 만큼 국제대회 개막식 공동입장은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남북한 공동입장이 중단됐다. 물론 경색된 남북관계가 첫 번째 원인이다. 스포츠는 정치와 별개라는 것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입장이지만 남북문제는 예외다.

남북 간 체육교류의 파국은 이미 지난 3월 예고됐다. 평양에서 열려야 했던 월드컵 축구 아시아예선 남북경기가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에 대한 북한의 문제 제기로 중국에서 치러졌다. 그뿐만 아니다. 올 4월26~27일 제주에서 열린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에 참가차 방한했던 북한 선수단 17명(임원 10명·선수 7명)의 숙식비를 남측에서 지원하려 했으나 북측이 거부한 일도 있었다.

남북관계 악화 요인 외에 국제스포츠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국내 인사가 없다는 점도 베이징올림픽 공동입장 무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2002년 시드니올림픽 당시 김운용 IOC부위원장이 장웅 북측 IOC위원, 사마란치 당시 IOC위원장과 긴밀히 협의하며 공동입장 성사 역할을 했지만, 이번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국내 인사가 한 명도 없었다. 유일하게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한국인 IOC위원으로 남아 있지만 특검 수사로 불구속 기소되면서 대회에 참가하지도 못했다.

베이징올림픽의 메달 종합순위(7위~33위)에서 보듯 남북의 경기력도 더욱 벌어졌다. 만일 베이징올림픽에 남북이 단일팀으로 참가했다면 성적은 크게 뒤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향후 남북 탄일팀 구성은 경기력 차이 때문에라도 쉽게 성사되지 못할 듯 싶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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