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사비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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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인 이상 전국 가구가 지난해 지출한 경조사비(慶弔事費)가 평균 51만9천원, 한해동안 국민의 경조사비로 사용한 돈은 7조6천681억원 이었다. 관련 통계가 있는 2003년 이후 4년 간 2인 이상 가구의 경조사비 지출액 증가율은 18.7%로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11.6%)보다 높았다. 경조사비 지출액이 물가상승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오르면서 생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셈이다.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경조사비가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상호부조 또는 사회보험’ 성격이 짙었지만 도시화와 개방화로 공동체의 범위가 불분명해지면서 ‘주고 받기’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예컨대 결혼한 동료가 이직, 퇴직을 하면 돌려받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특히 ‘권력’을 가진 쪽에 돈이 몰리고 사회적 약자일수록 물질적으로도 손해를 보는 불평등 구조로 변질되고 있다.

문제는 경조사비의 ‘참뜻’의 빛이 바래지는 경향이다. 경조사비를 내는 것은 네트워크를 쌓는 기능을 한다. 가령 ‘내가 이 모임(그룹)에 속해 있다’는 신호를 보내거나 때로는 이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행사에 참석하거나, 축의금만 내고 정작 식장에는 들어가지 않는 일부 관행도 이와 무관치 않다. 때로는 뇌물의 성격까지 띤다. 정권의 실세자 자녀 결혼식에 한 사람이 수백만원, 수천만원의 축의금을 냈다는 설(說)이 풍문만은 아니다.

최근에는 부조금이나 화환 대신 쌀 봉투를 받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람이 생기는 등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만 낡은 관행을 바꾸려면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오래 된 얘기지만 수원시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심재덕씨는 자녀의 결혼식 때 축의금을 일절 받지 않았다.

물가가 상승되긴 했지만 요즘 결혼식 축의금으로 3만원을 내려면 웬지 인색하거나 궁티를 보이는 것 같아 석연치 않긴 하다.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면야 넉넉히 내는 게 기분 좋은 일임은 말 할 나위 없다.그런데 가계가 어려워 하는 수 없이 맨손으로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친지를 얼마 전 보았다. 진정한 하객은 바로 그런 사람이지 싶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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