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산지폐기는 정부가 수급안정사업을 실시한 1995년부터 시작됐다. 가격등락이 심한 농산물의 가격을 안정시키고, 최소한의 농가소득을 지지하기 위한 수급안정사업의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도입됐다.
농산물도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공급과 수요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 공급이 많으면 값이 떨어지고 공급이 모자라면 값이 올라가게 된다.
농산물의 가격지지를 위한 산지폐기 수급안정사업은 지역농협이 파종기나 정식기에 재배농가와 계약재배 또는 출하약정을 체결한 후 생산과잉으로 값이 폭락하면 수매 후 산지폐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모든 농산물이 대상은 아니다. 수급 안정사업 대상품목인 16개 품목만 해당된다. 무·배추·마늘·양파·파·고추·당근 등 노지채소, 오이·호박·가지·풋고추 등 시설채소, 사과·배·단감·감귤 등 과실이다.
폐기 기준은 품목에 따라 다르다. 노지채소는 시장가격이 정부가 예시한 최저보장가격 이하로 하락하면 계약물량을 수매한 후 산지폐기 등 시장격리 조치를 한다. 시설채소는 경영비와 출하비용을 합친 금액 이하로 가격이 하락할 경우, 과실은 시장가격이 하락하거나 과잉생산이 우려될 경우 중하품을 대상으로 산지폐기하거나 시장격리한다.
농가에 대한 보상이 있는 건 다행이다. 지역농협이 산지폐기 대상 물량을 수매하면서 해당 농가에 최저보장가격을 지원한다. 최저보장가격은 품목별로 차이가 나는데 생산비에서 자가노력비를 뺀 경영비로 산정돼 있다.
올해 들어 유난히 농산물을 산지폐기하는 사태가 잦았다. 풍년과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부진이 산지폐기의 주범이다. 공급량이 너무 많아 값이 폭락해 농가들은 인건비는커녕 생산비도 건지지 못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은 수급안정자금으로 사회복지시설에 무상기증하면 좋았을 터인데 무·배추·오이·호박·가지·배 등이 무참히 폐기됐다.
수급안정과 시장격리로 가장 빠르게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 산지폐기라고 한다. 사회복지시설 무상공급은 운송비 등 추가비용이 발생, 한정된 예산으로 많은 물량을 격리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어 망설이는 모양이다. 농민들의 아픈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산지폐기는 너무 아깝다. 산지에서 폐기되는 농산물들을 보면 처참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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