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번(地番)

지번(地番)은 토지에 부여된 번호다. 번지라고도 한다. 한 번 부여된 지번은 변경될 수 없다. 법원 등기 등 공부상의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공부상의 혼란은 실생활의 혼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도시는 형성과정이 기형적이다. 서구사회처럼 먼저 블록화된 토지 기반에 도시가 들어서지 못했다. 그 반대다. 인가가 먼저 들어선 뒤에 도시기반을 조성했다.

연유가 있다. 6·25 한국전쟁의 피난민 및 월남동포 그리고 정전 후 보릿고개 시절에 도시로 급격히 몰려든 이농민 등 도시인구 팽창이 그 원인이다. 도시의 블록화, 상하수도 같은 도시기반 시설을 갖추고 인가가 들어선 게 아니고 인가가 조성된 뒤에 도로 및 상하수도 시설 등을 하곤 했던 것이다. 국내에 서구형 블록화 도로는 안산시가 유일하다.

그러니까 급격한 유입인구의 도시팽창은 도시마다 변두리에 무허가 건물의 양산화를 가져왔다. 이것이 나중에 무허가 건물의 양성화에 이어 재건축 과정을 거치면서 현대적 도시형태로 변화됐다. 당시엔 도시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현행 도시계획법이 시행된 것은 1971년부터다.

이러므로 지번 갖고 집 찾기가 어려운 것이 우리의 주택가다. 가령 178번지 같으면 177번지 등 인근에 있어야 할 터인데도 엉뚱한 데 떨어져 있기가 예사다. 당초 지번을 잘못 매긴 이유도 있지만 도시형성의 결함이 겹친 탓이다.

이를 시정키 위해 거리명에 가옥 번호를 시행하고 있다. 골목마다 ○○길이란 길 이름이 있고 건물마다 번호가 부여됐다. 그런데 좀처럼 생활화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실효성도 문제가 없지 않다. 우편물 배달 등엔 길거리 이름에 건물 번호가 편리할 지 몰라도 건물이나 토지 등 재산 관리에는 등기부상의 지번만이 사용된다.

앞으로 지번 대신 길거리 이름과 건물 번호를 등기부에 사용한다 해도 문제점이 많다. 건물이 아닌 토지, 특히 거리가 조성 안 된 토지는 번호를 매길 수가 없다. 병용한다 해도 공부 정리가 산적할 뿐만이 아니라, 불편을 야기하는 혼선이 막심할 것이다.

한데, 지번은 같은 번지라도 면적이 넓어 재분할된 번지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123의 1에서 30까지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123의30’라고도 쓰고 ‘123-30’라고도 쓴다. 그런데 흔히 ‘123의 30번지’라고 하는 것은 틀렸다. 번지에서 재분할된 땅 표기는 호(號)라고 한다. 그러므로 ‘123번지의 30호’라고 하는 것이 옳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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