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의 노고가 많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이렇다. 한데, 여기선 노고에 대한 위로보단, 부패공무원들을 나무라겠다. 일부의 부패공무원들이 있다. 이들로 인해 한국 공무원의 이미지가 바닥을 긴다.
‘한국 공무원은 부패했다’고 한 응답자는 50.5%, ‘공무원부패가 기업활동에 심각한 저해가 된다’는 응답자가 58%에 이른다. 주한 외국공관·주한 외국인상공회의소·외국인 투자업체 등에 근무하는 주한 외국인 200명을 대상으로한 설문조사 결과다. 조사는 국민권익위원회가 했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주요 22개국의 뇌물공여지수에서 한국을 하위권인 14위로 발표했다. 한 마디로 국제사회의 인식이 부정적이다. 말이 아니다.
외국인들에게 이런 평판을 듣는 판이니, 같은 내국인들에게는 더 말 할 것이 없다. 그나마 이는 부패의 개념을 지하부패에 국한한 것이다. 현대행정학이 부패로 분류하는 공식부패·준공식부패를 지하부패와 함께 부패의 범주에 포함하면 한국 공무원은 유감스럽게도 다 부패공무원으로 의심되는 유추해석이 나온다.
예를 든다. 점심시간이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관아를 나가 외식을 한다. 이들이 자기네 월급돈으로 점심을 사먹는다고 보는 외부의 시선은 별로 없다. 시민들도, 식당 주인들도 그렇게 본다. 시간외 수당이나 여비 등으로 잡비를 만든다. 만든다는 것은 예산집행의 관행적 방편이다. 공식부패인 것이다.
가령 공사의 기성고에 따라 중간 정산을 할 때면 지출되는 예산에 비례해 업자가 관련 부서에 사례금을 상납한다. 준공식부패의 불문률이다. 공식부패, 준공식부패의 사례를 든다면 또 많다. 이것이 한국의 공무원문화다.
이유가 있다. 시대적 배경이 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사무관급 봉급이 지금으로 치면 100만원도 안 됐다. 몇 십만원에 불과했다. 6·25전쟁을 치룬 혼란과 격동속에 나라의 재정은 마치 빈 창고와 같았다. 체계도 질서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공무원 발령은 정부가 해도, 먹고사는 문젠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던 게 그 무렵의 공무원사회다. ‘사바사바’가 성했던 것도 그 때다. ‘사바사바’는 뇌물의 은어다. 풍자어이기도 했다. 공무원을 거치는 일에 ‘사바사바’가 없으면 되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공무원 처우가 개선되기 시작하고 공무원사회가 안정을 찾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 제3공화국에 들어서다. 장구한 세월이 흐르면서 뇌물, 즉 지하부패에 대한 인식은 달라졌다. 외국인들이 비록 부패공무원이 많다고 하긴해도, 그리고 고쳐야 할 과제이긴 해도 뇌물을 당연시하진 않는다. 그러나 준공식부패나 공식부패에는 부패의 인식이 여전히 둔감하다. 1950년대에 생성된 불행한 과거의 공무원문화 뿌리를 아직도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은 재는 맛으로 한다. 공복이니 머슴이니 하지만 국가가 부여한 권한을 행사한다. 1급이든 9급이든 다 소임에 합당한 재량권이 있다. ‘공직’을 과시하는 연유가 이에 있다. ‘과거에 공직에 있었다’는 것은 은연중 뽐내는 말이다. 그리고 뽐낼만 하다.
공무원이 재는 맛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가치 창출이다. 공무원과 공무원사회가 생각하는 판단, 수치 등 직무의 이행가치 발생 정도에 따라 국민이나 주민생활의 질이 좌우된다. 행정공무원만이 이런 게 아니다. 교육공무원, 세무공무원도 그렇고 사법공무원 등 모든 공무원이 다 마찬가지다. 이는 공무원의 긍지다.
또 하나 재는 맛은 대민업무다. 그런데 민원서류를 들고 관공서를 찾는 민원인 치고 기분좋은 맘으로 찾는 이는 거의 없다. 공무원 치고 민원을 접수하면 으레 첫 마디가 ‘된다’기 보다는 ‘안 된다’고 퇴짜놓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민원인이 시달림을 받는 곳이 우리 공무원사회의 민원창구다. 이는 공무원의 폐악이다.
물론 안 되는 것도 있는 게 민원이다. 그러나 될 일도 안 된다 하고, 안 될 일도 되는 것이 공무원사회의 민원처리다. 어떤 민원인에게는 이런 저런 방법으로 되는 길을, 심지어는 편법을 써가며 친절히 가르켜주는가 하면, 어떤 민원인에게는 물어도 대답이 시원찮다. 시큰둥하거나 퉁명스럽다. 친절히 대하는 것과 시원찮게 대하는 차이의 까닭은 뭣일까, ‘사바사바문화’의 잔존이다. 불행스러웠던 공무원사회의 관행적 뿌리를 역시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은 가장 안정된 직업이다. 처음 직업을 갖는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장이다. 처우도 그만하면 괜찮다. 월급도 괜찮고 상여금도 괜찮다. 자녀들 학자금도 있다. 퇴직해도 연금으로 노후가 보장된다. 이같은 처우에 드는 돈이 국가공무원은 국민, 지방공무원은 주민의 세금으로 나간다. 기업체 사원은 사원이 기업이익을 창출한 이윤으로 월급을 탄다. 공무원은 무슨 이익을 창출한 대가로 국민 또는 주민의 혈세를 월급으로 타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공무원사회는 엘리트 집단이다. 묻겠다. 한국의 공무원은 과연 부패했는가, 부패했으면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묻는 것이다.
/임 양 은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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