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한국복식사는 구두의 국내 도입을 1880년대로 친다. 개화파 정객, 외교관들이 일본 미국 등지서 사 신고 들어온 것이 기원이다. 이러다가 1894년(고종 31년) 갑오경장으로 양복이 공인되면서 상류사회에서 구두가 보편화됐다. 당시엔 구두를 양화(洋靴)라고 했다.

서울에 양화점이 등장한 것은 1905년으로 기록돼 있다. 검정 에나멜 구두가 유행된 것으로 전한다. 구두도 시대에 따라 유행이 달랐다. 최초의 구두 도입기엔 목이 발목위까지 올라와 발등부터 버튼이 달려 잠그는 장화형의 버튼부츠였던 것이 구두끈을 매는 단화형으로 차츰 변모했다.

여성용 구두는 개화기에 기독교 전도사 부인들이 들어오면서 퍼지기 시작했다. 이 무렵의 여성 구두는 굽이 낮은 예장화 스타일이었다. 하이힐이 널리 보급된 것은 1930년 대다. 하이힐을 가리켜 ‘뾰족구두’라고도 했다. 신여성의 대명사로 불리웠다.

전에는 모두가 맞춤구두였다. 구두방에 가서 발을 재고 본을 떠서 만든 수제품 일색이었다. 그러다가 지금처럼 기계로 대량생산하는 기성화가 일반화되어 제화점이 사양화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다. 구두가 국내에 도입된 지난 120여년 동안에 이밖에도 많은 변천을 거듭했다.

구두가 주요 뉴스가 됐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에서 난데없는 구두세례를 받았다. 지난 14일 비밀리에 깜짝방문, 기자회견을 갖던 중 이라크 기자가 구두 두 짝을 잇달아 던지는 봉변을 당한 것이다. 구두를 던진 사람은 알바그다디야 TV의 알자이디 기자다. 그는 “전쟁은 끝났다”는 부시의 말 끝에 “이라크인이 보내는 이별 키스다. 이 개야”라는 소리와 함께 그같은 행위를 한 것이다. 미국 대통령 경호팀이 덮쳤으나 이미 구두 두 짝을 다 던진 뒤다.

“대통령이 고양이처럼 민첩한 순발력을 보였다”는 것은 미국 CNN의 촌평이다. 연단에서 고개를 숙여 구두공세를 피한 부시는 “내 신발 사이즈를 알길 원한다면 답은 10(인치)사이즈다”라는 농담으로 사태를 얼버무렸다.

1960년 후르시쵸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유엔총회에서 구두를 벗어 연단을 치면서 연설한 이후 처음 외신을 탄 구두 관련의 주요 뉴스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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