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침묵

물리적 변화는 합성이다. 합성은 원상적 분리가 가능하다. 화학적 변화는 융합이다. 융합은 원상적 분리가 불가하다. 한나라당의 고질병이 이른바 친이·친박 계열의 암투다. 이 비상시기에도 암투의 저류가 흐른다. 융합을 못하고 합성돼 있기 때문이다. 원내 거대 여당이면서도 맥을 못추는 연유 또한 이 때문이다.

국회 의사당에서 해머와 전기톱이 설치는 난장판인데도 친박 계열은 이재오 조기 귀국설에 더 신경쓰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대신해 당의 기강을 바로잡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이재오 조기 귀국설의 관측인 것이다. 이재오는 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살피는 측근이긴 하다. 김대중에게 박지원이 있고, 노무현에게 문재인이 있었다면, 이명박에겐 이재오 인 것이다.

이재오가 내년 초에 귀국하고 안 하고는 그들의 일이므로 관심이 없다. 관심을 갖는 것은 박근혜의 침묵이다. 박근혜가 당의 영수급 인물이라면 집권 여당이 처한 이 어려운 시기에 침묵을 지키는 것은 괴이하다. 침묵이 때론 정부 여당을 돕는다고도 할 수 있지만, 작금의 상황은 아니다.

지난 번 촛불집회 때도 그랬다. 나중에 가서 기껏 한다는 게 ‘정부도 반성하고 시위도 반성해야 한다’는 식의 양비론을 내놨다. 양비론이나 양시론은 하나마나 하는 비겁한 기회주의적 논리다.

정부 여당이 경제위기 타개에 난국을 맞고 있는 이즈음 박근혜가 힘을 실어주는 좋은 말 한 마디를 해주는데 무척 인색하다. 친박 계열의 행적에만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매케인은 오바마를 공격하는 공화당전국위원회에 “지금은 당보다 미국이 있을 때”라면서 “공화당은 오바마에 대한 비난보단 힘을 합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근혜에게 이명박은 경선을 겨룬 정적이긴 해도 같은 당 사람이다. 당이 틀리고 대선에서 겨룬 오바마와 매케인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박근혜에게 듣고 싶은 소릴 매케인이 했다.

박근혜의 차기설을 말하지만, 이명박이 실패하면 박근혜의 차기도 있을 수 없다. “글쎄요? 웬지 그 분의 처신에 요즘은 회의감이 들긴 해요” 친박 계열의 한 중진급 국회의원이 내뱉는 말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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