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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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큰 획(BC/AD)을 그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던 당시, 이스라엘은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본명 옥타비아누스) 초대 로마 황제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의 조카였던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내란을 종식시키고 혼돈과 폭동을 잠재우면서 법과 질서로 대표되는 로마의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세네카가 붙인 ‘아우구스투스의 평화’는 나중에 ‘팍스 로마나’로 발전할 만큼 아우구스투스의 정치적 영향력은 막강했다. 황제 숭배를 강요했던 그는 스스로 메시아를 자처했다. 하지만 그 평화는 로마의 군사력에 의한, 피로 물든 평화였다. 군사력을 가진 권력자, 원로원 등 지배계층에 의한 가짜 평화와 가짜 구세주가 통치하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으로, 모든 인류의 구원자로, 사랑의 메시아로 태어났다.

메시아의 탄생을 고대하며 준비해야 할 이스라엘은 깊은 잠에 취해 있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는 제사장들의 타락상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여호와의 이름을 멸시하고(1:6), 많은 사람들을 죄악에서 떠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느님의 법에서 떠나게 했다(2:8). 이스라엘 백성들은 잡혼과 이혼, 헌물 도적질을 일삼았다. 신앙과 겸손 대신 불신앙과 교만이 칭송 받는 시대였다(3~4장). 이스라엘의 이 같은 암흑의 역사는 예수가 올 때까지 400여년간이나 지속됐다.

2400여년 전 말라기 선지자의 지적이 큰 울림으로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과 지금 세계가 처한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 탄생 당시의 로마 세계는 절대 군사력에 의한 인간 중심의 평화를 지향했으며, 지금은 경제의 힘에 의한 인간 중심의 평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오늘의 지구촌 위기는 경제적 풍요만을 추구했던 인간의 탐욕으로 빚어졌다. 권력자들과 돈의 힘을 의지했던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가졌으면서도 빈자의 모습으로, 또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의 헌신자로 오신 예수의 탄생 의미를 경건하게 다시 새겨야 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예수의 출생지 베들레헴 근처에서 밤 중에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들려준 천사들의 찬송 소리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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