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생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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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시험의 바늘구멍을 통과한 예비 법조인들은 2년간 사법연수원에서 별정직 5급 신분으로 월급을 받으며, 법률 전문가로서의 소양도 키우고 도덕적 담금질도 한다. 적잖은 비판 속에서도 이런 혜택이 유지되는 것은 예비법조인들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연수 기간 동안 연수원생들은 국가공무원법 64조에 따라 돈벌이를 할 수 없으며, 법률 지식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훈련받는다.

연수원생들은 고양시 마두동에 있는 사법연수원을 ‘마두고’라고 부른다. 대입을 준비하는 고3 수험생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판·검사 임용과 대형 로펌 취직 안정권인 300~400위 안에 들기 위한 성적 경쟁은 그야말로 소리 없는 전쟁이다. “사시는 떨어지면 또 볼 수 있지만, 연수원은 수료 성적으로 인생이 좌우되기에 사시보다 부담감이 더 크다”고 연수생들은 고충을 토로한다.

부정 행위 방지 노력도 살벌(?)하다. 시험실엔 남녀 각각 하나씩 표찰을 두고 한 명씩만 화장실에 가도록 하고 있다. 공익근무요원이 화장실 앞에서 감시하고, 시험 전날엔 화장실을 ‘압수수색’하기도 한다. 회식 때 교수와 가까운 자리에 앉으려는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얼굴 도장’을 찍어 인·덕성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다. 일부 연수원생은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지만 취업에 불이익이 있을까봐 숨길 정도다. 시험을 보다 쓰러진 연수원생도 있었다.

그런데 사법연수원 수료예정자 1명이 취업을 위해 성적표를 조작했다가 발각돼 중징계를 받았다. 대기업 변호사가 되기 위해 컴퓨터와 스캐너로 성적을 조작했다. 다른 3명의 수료예정자는 고시촌 사설학원에서 불법강의를 하다 적발됐다. 이 중 1명은 연수원 사상 처음으로 4.3점 만점을 받아 수료식에서 대법원장상을 수상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뛰어난 법지식과 연수성적도 인성과 도덕심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임을 보여줬다. ‘잘 나가는’ 연수원생은 한 과목에 1천만원까지 받고 강의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사법시험 1천명 시대’가 시작된 이래 ‘사시합격=행복시작’의 등식은 깨졌다지만 사시 합격은 ‘하늘의 별 따기’다. 극소수의 탈선으로 전체 사법연수원생들의 의지가 흔들리면 더욱 큰일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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