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1916~1956)은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화가다. 야수파는 20세기초 프랑스에서 바람이 불었다. 굵은 선으로 대담하게 단순화를 시도한 혁신적 화풍이다. 이중섭은 소, 개 등을 소재로 향토적인 그림을 주로 그렸다.
그러나 생활이 불우했다. 6·25 전쟁 때 평양에서 월남해 피란시절을 대구에서 보냈다. 다방에서 진종일 보내며 담뱃갑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
박수근(1914~1965)은 회백색 구조의 간결한 선묘로 표현하는 생활 주변의 풍경을 많이 그렸다. 강원도 양구 사람이다. 박수근에 비해 이중섭은 요절했으나 두 화가의 연대는 비슷하다. 다른 것은 이중섭은 일본에서 그림 공부를 했고 박수근은 독학을 한 점이다.
두 화가의 작품에 위작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얼마전에 이중섭의 그림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위작 논란이 일어났었다. 그처럼 많은 그림을 남길 수 없었고, 또 화풍의 선 처리가 다르다는 의문이 제기됐던 것이다. 아마 이중섭 생전에 피웠던 ‘건설’이나 ‘공작’ 담뱃갑에 그린 그림일 것 같으면 그같은 논란이 일지 않았을 지 모른다.
박수근의 그림도 위작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그의 작품 ‘빨래터’는 아직도 진품 여부가 가려지지 않고 있다. 이중섭의 그림이나 박수근의 ‘빨래터’나 다 전문가들 감정을 거쳤지만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법원에 재판이 걸려있다.
불황이다 뭐다 해도 이중섭, 박수근 같은 대가의 작품은 부르는 게 값인 모양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그림이 이번엔 위작이 아닌 뇌물 시비에 휘말려 있다. 모 작가의 그림으로 ‘학동마을’이란 작품이다. ‘학동마을’은 비구상이다. 자유로운 형태와 색채로 표현된 추상화다.
거액의 이 그림을 한상률 국세청장이 국세청 차장이던 때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뇌물로 건넸다느니, 사실이 아니다느니 하여 말썽이 되고 있다. 뇌물 시비가 일어난 지가 꽤 됐는데도 진실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주목되는 건 대가들 그림이 대개는 사후에 소장 가치가 형성된 점이다. 이중섭의 그림도 생전에 지금같은 평가를 반에 반만 받았어도 돈이 없어 고생한 일 없이 거부가 됐을 것이다. 열정적 색채 구사로 유명한 정열의 화가 고흐(1853~1890) 또한 생전엔 그림 한점 제대로 팔지 못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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