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니

진(秦)나라가 6국을 통일, 중국 최초의 대제국을 세운 게 BC 221년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제후를 왕으로 불렀던 것을 중앙집권의 대제국 군주를 처음으로 황제라고 칭한 것이 이때부터다. 진시황제(秦始皇帝)의 유래다. 시황제의 성명은 ‘영정’이다.

시황제는 유명한 아방궁을 두는 등 주지육림의 호사를 누렸다. 부러울 게 없는 그도 부러운 게 하나가 있었다. 건치다. 건강한 이다. 이가 나빠 맛있는 음식이 많아도 잘 먹지 못했던 것으로 문헌은 전한다. 고기도 다져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연회자리에서 신하가 이가 좋은 식성은 금기로 삼기도 했다.

이는 간수를 잘해야 하긴 하지만 유전이다. 시황제는 우리 나이로 50에 죽었다. 나이 50살에 벌써 이가 그토록 나빴다면 유전적이었던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이가 나빠 먹지 못하면 정말 딱한 노릇이다. “실컷 먹어 보면 소원이 없겠다”는 것은 이가 나쁜 이들의 탄식이다. 옛부터 건강한 이를 오복 중 하나로 꼽았던 연유가 이 때문이다.

치과 의술이 극도로 발달했다. 지금은 의치나 틀니는 기본이고 이를 새로 심기도 한다. 젖먹이 때부터 난 20개의 유치가 빠진 뒤에 나는 32개의 영구치는 한 번 빠지면 다신 안 난다. 다시 안 나는 영구치를 의치로 해 넣어 보철하기도 하고 많이 빠졌으면 틀니를 하기도 하는데, 심는 이는 원래의 제 이보다 낫다.

시황제가 지금 같았으면 이가 나빠 고생하는 일은 없었겠지만 그 무렵의 치과 의술은 치통에 피마자 열매를 뜨겁게 달구어 환부에 대고 진정시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현대인들도 이가 나빠 고생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의술은 발달했지만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새로 심는 것은 고사하고 의치도 못해 놔둔 게 더 나빠져 틀니를 해야 하는데도 못하는 노인이 수두룩하다. 의치나 틀니 정도는 이제 건강보험이 적용돼야 한다.

인천시 남동구보건소가 무료로 틀니를 해주고 있다. 돈도 없고 건강보험도 적용 안돼 고생하는 65세 이상의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노인 90명에게 틀니를 만들어주고 있다. 틀니에 드는 1인당 비용으로 238만원을 남동구보건소가 댄다. 남동구관내 노인들은 그 옛날 시황제가 부러워할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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