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권사상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기자페이지

촛불 시위현장에서 어김없이 부르는 노래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내용이다. 원래 헌법 1조의 정신은 다산 정약용(1762~1836)에게서 나왔다. ‘목민관은 누구를 위해 있는가’라는 산문에서다.

“지금의 목민관은 옛날의 제후나 마찬가지다. 거처하는 건물, 수레와 말, 의복과 음식, 좌우의 측근과 시종, 하인들이 거의 나라의 임금에 비길 정도다.(중략) 그러므로 백성이 목민관을 위해 있다고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어찌 바른 이치이겠는가. 목민관은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다” “모든 권력이 백성한테서 나온다”는 다산의 말은 서구 사상과는 무관하게 조선에서 자생한 ‘민권사상’이다. 여기서 다산은 공직자의 개념을 왕으로까지 확산하고 그 비유를 파리에서 찾았다.

1809~1810년에 기근과 전염병으로 수많은 백성이 죽었다. 마을과 거리에 쌓인 시신에서 파리떼가 생겨나 극성을 부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산은 그 파리떼가 바로 굶주려 죽은 백성이 변신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백성의 넋을 위로하는 마음에서 ‘파리를 조문한다’는 글을 지었다.

“아아, 파리를 죽여선 안 된다. 굶어 죽은 사람들이 파리가 되었다. 아아, 이 파리들이 어찌 우리 사람들과 마찬가지가 아니랴.(중략) 파리야, 날아서 북쪽으로 가거라. 북으로 천 리를 날아 궁궐로 가거라. 임금님께 그대의 충정을 하소연하고 깊은 슬품 펼쳐 아뢰어라. 어려운 궁궐이라고 시비를 말 못하진 마라. 해와 달처럼 환히 백성의 사정 비추어서 어진 정치 펴 주십사 간곡히 아뢰어라.”

다산은 평생토록 민중의 편에 서서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예리하고 철저하게 비판한 선비였다. 그렇지만 꽃과 나무, 산과 물, 가까운 사람들과 정을 나누기도 하고 홀로 고요와 고독 속에 침잠하기도 하였다.

다산은 국화가 다른 꽃보다 뛰어난 네 가지를 “늦게 피는 것, 오래 견디는 것, 향기로운 것, 아름답지만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지만 차갑지 않은 것”이라고 꼽았다.

40세 때 정적의 모함을 받아 18년 동안 유배된 다산은 “나는 나를 허투루 간수하였다가 나를 잃은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낮췄다. 다산이 굶주린 파리떼를 조문한 마음을 위정자들이 아는 지 모르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