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는 나라가 영국이다. 민주주의의 발상지다. 그런데 중세기의 귀족제도가 아직도 있다. 공작·후작·백작·남작·자작의 귀족계급은 비록 명예에 그치지만 지독한 모순이다. 지독한 모순이 또한 사회기여에 의한 사회통합에 지극한 조화를 이룬다.
영국 왕실의 소식은 내각보다 더한 국민적 관심의 뉴스다. 정신적 단합의 구심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같은 왕실이 있고 귀족제도가 있다고 해서 영국을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사람의 값어치를 존중하는 나라가 영국이다.
불문율이다. 성문율이 아니다. 관습법이 곧 법인 것이다. 심지어 헌법도 불문헌법이다. 성문헌법이 아닌 불문헌법은 영국이 유일하다. 전문(前文)에 전문(全文) 130조와 부칙 6조로 된 성문헌법을 두고도 위헌 여부의 헌법 소원이 잇따르는 우리와는 판이하다. 국정 운영에 조문으로 된 헌법이 아니어도 헌정 질서가 확연하다. 영국의 불문헌법은 다른 나라에서의 성문헌법보다 더 존중되고 있다.
일곱살난 남자 아이의 죽음에 영국 정치권이 애도했다는 외신보도가 눈길을 끈다. 남자 아이 아이번은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와 중증 간질을 앓은 장애아다. 부모가 쏟는 애정은 극진했다. 아이번 또한 밝게 자랐다. BBC 방송은 3년 전 이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방영해 영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 아이가 지난 25일 죽은 것이다. 아이 아버지는 데이비드 캐머린 보수당 당수다. 캐머린 부부는 장애아 아들을 키우면서 사회적 약자보호에 관심을 크게 갖게됐다. 노동당 정부는 투병 중 갑자기 악화되어 숨진 아이번의 죽음을 애도해 의회의 질의 답변 일정을 하루 쉬었다. “정치는 때로 우리를 갈라 놓지만 시련의 시기에 서로를 향한 위로는 우리를 하나로 묶는다”는 것은 집권 노동당 당수인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의 말이다.
영국이라고 정권 투쟁이 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투쟁을 할 때 하더라도, 인간적 불행을 서로 보듬는 영국 정치인들의 미덕이 무척 부럽다. 모순의 조화로 민주주의의 인간애를 꽃피우는 그들의 젠틀맨십, 즉 신사도 정신이 대영제국을 대국으로 이끄는 저력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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