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간 권력은 미쳤고 살아있는 권력도 미쳐간다. 사라진 노무현 정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한 측근들이 줄줄이 박연차 리스트 돈 그물에 걸렸다. 살아있는 이명박 정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천신일 세종나모 회장이 박연차 리스트와 관련, 검찰의 수사 대상인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천 회장은 이 대통령과 고려대 61학번의 동창으로 50년 지기다. 대선 땐 고대 교우회장으로 선거운동을 했고, 대통령의 고향인 포항에서 해운사업을 했다.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도 가깝다. 청와대에 수시로 드나들며 밥 때면 대통령과 겸상을 한다.
천 회장이 태광실업 세무조사에 대해 이종찬 청와대 전 민정수석과 대책을 의논한 게 지난해다. 천 회장은 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도 막역한 사이다. 천 회장이 1997년 대한레슬링협회장을 지낼 때 박 회장은 부회장을 맡았다. 2006년 박 회장이 휴캠스를 인수하자 이번엔 천 회장이 사외이사직을 맡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 사위에게 건네진 박연차 회장의 500만 달러(약 65억원) 돈에 대한 성격이 무엇이냐는 얘기는 부질없다. 대통령이 아니면 조카 사위에게 뭣 때문에 그같은 돈을 주었겠느냐고 보는 것이 사회통념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에게 준 것’이라는 박 회장의 진술이 있었다는 말이 있다. 문제는 노 전 대통령의 임기말에 건네진 500만 달러의 돈을 노 전 대통령이 언제 알았느냐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측은 ‘최근에 알았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같은 말은 재임 때 알았다고 하면 포괄적 뇌물죄가 성립되기 때문에 이를 모면키 위해 둘러대는 말일 수 있다. 검찰 수사의 핵심인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언필칭 민중적 도덕성을 내걸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썩어 문드러진 ‘양두구육’의 정권이다. 물론 그들의 부패상은 철저히 밝혀내야겠지만 이미 사라진 정권이다. 이명박 정권의 부패상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살아있는 정권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최측근인 천신일 세종나모 회장에 대한 수사의 추이는 이 점에서 국민의 눈이 쏠려있다.
그런데 웬지 불안하다. 청와대 김 모 전 행정관의 성상납 로비 의혹이 해결은 커녕 축소 의혹이 증폭되는 걸로 미루어 시원찮을 조짐이다. 이 경우, 단순히 술 자리에서 성상납을 받은 것이 아니다. 케이블 텔레비전업체 합병 등 문제가 거론된 술 자리다. 이엔 관련 업계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일종의 방송시책이다. 청와대 시책이 고급 룸살롱에서 논의됐다면 이 또한 ‘양두구육’의 정권과 다를 바가 없다.
어느 여배우의 유서에 적힌 유력 인사들의 술자리, 잠자리 강요 등은 정권과 유관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역시 경찰 수사가 지지부진하다. 좋지않은 일을 두고 억울하게 죽은 여배우의 이름만 자꾸 거명되고 있다. 혹시 드러나선 안될 인사가 있어 그러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이래서 나온다.
이 모든 것에 대한 투명한 뒷처리의 책임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 살아있는 정권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먼저 자신에게 가혹해 보여야 된다. 최측근인 천신일 세종나모 회장부터 주저없이 사정의 칼날에 올리는 것이 순서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그래야만 탄력을 받는다. 청와대 김 모 전 행정관이나 여배우 관련의 경찰 수사 역시 마찬가지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경제 위기에 국한하지 않는 세상사 이치다. 살아있는 정권에 쏠린 이런저런 의혹은 잘만 처리하면 되레 기회가 된다. 쾌도난마의 서릿발 같은 비리 척결은 사회적 박탈감에 빠진 국민사회의 공분을 달래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지 않고 살아있는 정권의 의혹을 묻어둔다면, 사라져간 정권의 의혹도 함께 묻힐 수밖에 없다. 이는 전 정권이 먹을 욕까지 함께 덤터기로 뒤집어써 더욱 수렁깊은 지지도 추락을 자초할 것이다.
사람으로 인해 흥하고 사람으로 인해 망하는 것이 측근이다. 측근은 또 자고로 충신이 있고 간신이 있다. 현군 밑에 충신나고 암군 밑에 간신난다. 그런데 현군 밑에 나는 간신은 신뢰를 저버린 배신이다.
예컨대 등창을 놔둔다고 살이 되는 것이 아니다. 더 덧난다. 이참에 묵은 등창, 새 등창 할 것 없이 배신으로 곪은 비리는 다 터뜨리는 ‘빅뱅’이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길이며, 이는 이명박 대통령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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