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장자연씨가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오늘로 한 달이 된다.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는 그가 남긴 유서 형식의 글에 나오는 유력인사들이다. 고인은 특정 인사들에게 술 접대나 잠자리 강요를 당한 연예계 부조리를 폭로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선 것은 당연한 소임이다.
그런데 경찰 수사가 영 지지부진하다. 이에 겹쳐 다소 진척된 내용도 ‘쉬쉬’하며 감추기에 급급하는 형상이다. 예컨대 누군가를 출국금지 시켰으면서도 정작 그가 누구인지는 함구로 일관한다. 유력 인사 소환설 또한 매주 나오는 소리로 ‘설’로 그치곤 한다.
이런 가운데 축소 수사설이 또 나오고 있다. 내사 종결 형식으로 수사를 마무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부만 소환 조사할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역시 확인되지 않은 ‘설’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설’이 무성한덴 경찰 수사의 책임이 없다할 수 없다. 사건은 미적거리면서 오락가락하다 보니 갖가지 ‘설’이 난무하는 것이다.
경찰은 수사 대상의 유력 인사들에 대한 사생활 보호를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인의 인격권 보호도 생각해야 된다. 벌써 한 달 째 거의 날마다 언론에 보도됐다. 장자연씨 글이 밝힌 술 접대, 잠자리 강요는 강요를 받았다는 것이지 그 이상은 적시된 게 없다. 그러나 본인의 의사에 반한 강요는 그 이상의 행위가 없었더라도 능히 협박죄가 성립된다.
고인은 스물아홉 아까운 나이에 죽음으로 항거했다. 이의 부조리를 척결하는 것은 연예계를 바로 세우고 고혼을 달래는 의미가 담겼다. 그런데 작금의 경찰 수사와 언론 보도를 보면 고인의 인격권이 날마다 침해 당한다. 경찰 수사도 문제가 있지만 언론 보도 또한 문제가 적지 않다.
유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해야 된다. 지지부진한 경찰 수사, 흥미 위주의 언론 보도에 유가족들이 겪는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다. 경찰 수사가 한 달이나 끌면서도 사건을 해결치 못하는 것은 무능하거나 특정인을 봐주기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무능한 것이 아니라면 사건 뒤에 도사린 유력 인사란 그 자가 도대체 누구인가를 사회는 알 권리가 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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