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 걸작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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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예술을 대표하는 미켈란젤로는 당시 최고 권력자인 교황의 주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교황의 명령으로 1512년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를 완성했으나 노예상 연작은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권력자의 변덕과 교체에 따라 다른 작품의 주문에 밀려났기 때문이다. 후대 사람들은 이 노예상들의 모습에서 예술가의 저항과 고통, 그리고 자존심을 읽기도 한다.

음악가 푸치니는 60대의 나이에 이르러 웅장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겠다는 포부로 열정을 쏟았다. 오페라 ‘투란도트’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대본 작가들의 글이 함량에 미치지 못하자 직접 쓰고 작곡할 정도로작품에 몰두했으나 후두암으로 숨지는 바람에 완성하지 못했다. 이후 작곡가 프랑코 알파노가 뒷부분을 완성하고, 1926년 밀라노 스카라극장에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초연됐다.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고딕 양식에서 한발 나아간 새로운 건축물이었다. 가우디는 이 성당이 기부를 바탕으로 한 속죄의 사원이라는 취지에 충실하려 했다. 성당 건설은 그의 죽음으로 중단된 뒤 스페인 내란으로 파괴의 길에 접어들어 20년간 방치됐지만 지금 건설 중이다.

프랑스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가 연출한 단편 ‘시골에서의 하루’는 모파상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파리의 한 상인 가족이 소풍 갔다가 벌어지는 한나절 이야기를 그렸다. 그런데 촬영 기간 중 폭우 등으로 원하는 장면을 찍기 어려워진 데다 촬영 스태프의 불화가 겹쳐 영화는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이 작품은 미완성 상태로 개방됐으나 오히려 걸작이란 호평을 받았다.

마릴린 먼로의 30번째 영화가 될 뻔 했던 ‘섬싱스 갓 투 기브’는 1962년 4월 촬영을 시작했으나 20세기폭스사가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그해 6월 제작을 중단했다. 다시 10월에 촬영을 재개할 예정이었으나 이에 앞서 8월에 먼로가 사망하면서 미완성작으로 남았다. 여기에 먼로의 순탄치 못했던 삶과 죽음을 둘러싼 소문 등 숱한 얘기를 남겼다.

문화와 시대를 통틀어 수많은 미완성 작품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여곡절이 많아 숨은 사연 자체가 걸작이 되기도 한다. 우리 인간의 삶도 결국은 미완성이다. 나름대로 의미가 깊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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