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속 장대비에 “대통령 우신다” 주민들 오열

< 현장르포 > 봉하마을 빈소 1박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의 모습은 마을회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진혼곡처럼 침통하고 스산했다.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질 때까지만 해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던 김해 봉하마을 주민들은 오후 6시30분께 양주부산대병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돌아오자 실감이 나는지 하나 둘 오열하기 시작했고, 이내 봉하마을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마을주민들은 농번기철 농사일에 모두 손을 놓은 채 하염없이 울기만을 반복했고 이 과정에서 바닥에 주저앉거나 실신하는 사람들이 부축을 받으며 잇따라 실려 나갔다.

언론과 일반인들에 대한 철저한 통제로 취재진은 물론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보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은 사람들까지 쉽게 접근하지 못했고, 일부 주민들은 “보수 언론이 노 전 대통령을 죽였다”며 취재를 방해하기도 했다.

벌써부터 자리를 잡고 있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장례지원을 자청, 몰려드는 사람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마을회관 내로 옮겨진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염을 하고, 입관 작업을 하는 2시간 동안 사람들은 숨죽인 채 기다렸다.

이들에게 노사모 측에서 사온 양초가 손에 손을 거쳐 나눠졌고, 빈소 앞은 금세 촛불집회장처럼 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숨죽여 기다리던 사람들은 오후 7시께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화환이 도착하자 격분, 일부 주민과 노사모 회원들이 화환을 짓밟았고, 이를 제지하려는 또 다른 주민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화환을 전달하려던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도록 가슴 속에 숨겼지만 수많은 주민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살인자 이명박”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현 정부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소리쳤다.

주민들과 노사모 회원들의 분노는 오후 7시35분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봉하마을 앞에 도착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거세졌다.

일부 노사모 회원들이 이 총재가 탄 차량을 둘러싸고 진입을 막았으며 계란을 던졌다. 한편에서는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렇게 봉하마을 입구는 보수정치인들을 막으려는 세력과 문상만이라도 하게 해줘야 한다는 사람들 간 갈등이 빚어져 혼란스러웠다.

마을주민들은 밤새 자리를 떠나지 않으며 애타는 마음을 소주로 달랬고 손에는 촛불을 하나씩 밝혀든 채 노 전 대통령의 생가까지 다녀오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마음 아파했다.

24일 일요일을 맞아 조문객들이 더욱 늘면서 대형 빈소가 다시 마련됐고 이내 마음을 추스린 마을주민들이 음식준비 등에 분주했다.

하지만 오후 들어 장대비가 내리자 주민들은 “억울하게 운명을 달리한 노 전 대통령이 하늘에서 우는 것”이라며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마을주민 박기문 할머니(72)는 “봉하마을에 이렇게 많은 비가 온 적이 없다. 분명 노 전 대통령이 억울하게 죽은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는데 농사가 무슨 의미가 있냐. 마지막까지 가뭄기 주민들에게 선물을 주고가는 노 전 대통령이 그립다”며 오열했다.

/봉하마을=박수철기자 scp@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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