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지전(傾國之錢)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말이 있다. 동서양의 왕조에서 흔히 있었던 일이다. 나라가 요동칠만큼 임금을 미색에 빠지게 만든 여인의 미모를 일컫는다.

클레오파트라는 고대 로마 안토니우스를 사로 잡았다. 양귀비(楊貴妃)는 당나라 현종(玄宗)을 매혹시켰다. 경국지색이었던 것이다. 조선 왕조에서는 장희빈이 숙종의 총애를 어지럽혔다.

그런데 결과는 좋지않는 것이 경국지색의 말로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와 연합한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해 자살했다. 양귀비는 안녹산의 난을 유발해 죽임을 당했다. 장희빈은 폐서인되어 사약을 받았다.

‘경국지색’이란 말은 있어도 ‘경국지전’(傾國之錢)이란 말은 못 들었을 것이다.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경국지전’을 실감케 한다. 나라가 요동칠만큼 권력이 돈에 농락당한 것이다.

박연차 게이트가 이렇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결국 자살이란 비극적 종말을 고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돈 받은 사람이 너무 많아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그에게 돈을 안 받았으면 축에서 빠졌다 할만 하다. 여야 국회의원들, 청와대 비서실, PK지역 단체장, 전 경찰청장, 고위 검찰 간부, 법원 부장판사 등등 정관계 요로에 안 걸린 사람이 거의 없다. 심지어는 이 정권의 실세 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도 박 회장에게 코가 꿰였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는 평소 돈을 너무 밝혀 당해도 싼 사람이 있지만, 좀 아까운 사람도 없지 않다. 어쩌다가 잘못된 돈 그물에 걸린 인물이 아깝거나 전공이 가석하게 된 사람도 있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박 회장의 돈살포는 뇌물 성격의 보험금으로 전방위적으로 뿌려졌다.

근데 추정해보면 이토록 뿌린 돈이 약 100억원을 웃도는 것 같다. 서민들이야 평생 만져보기는 커녕, 100억원 뭉칫돈을 볼 수도 없는 거금이다. 하지만 있는 사람에겐 돈 100억원이 그리 큰 돈은 아니다. 이즈음은 신도시사업 땅 보상금으로 100억원을 받은 사람이 숱하다. 태광실업 회장의 입장에서는 푼돈일지 모른다. 그런데 온 나라 안이 발칵 뒤집혔다. ‘경국지색’이 아닌 ‘경국지전’의 폐해를 절감한다. ‘경국지전’ 역시 끝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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