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은 판유리 뒷면에 수은을 칠해 만든다. 유리는 또 석회암 등을 고온으로 용해하여 만든다. 국내에 출토된 가장 오래된 유리는 낙랑시대의 것으로 유리구슬 유리귀걸이 같은 장식 유리다. 신라시대에는 유리그릇이 발달했다. 그러나 판유리에 대한 기록은 없다. 고려와 조선시대 들어서는 청자·백자 등 도자에 밀려 유리제품은 쇠퇴했다. 유리제품의 근대화가 시작된 것은 고종 때인 1902년 이용익이 세운 국립유리제조소가 효시다.
근대화 이전엔 거울이 귀했던 것은 거울을 만드는 판유리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동경(銅鏡)은 구리로 만든 거울이다. 동판을 얼굴이 비치도록 번쩍거리게 만들었다. 사대부 집에서나 썼다. 석경(石鏡)도 있었다. 돌거울이다. 특히 중국 강서성 북부 여산의 벼랑에 있는 돌은 얼굴이 잘 비쳤다. 면경(面鏡)은 얼굴이나 들어다 볼 정도의 작은 손거울을 말하는데 이를 또한 석경이라고도 했다.
명경(明鏡)은 근대 문물이 도입되고 나서 지금 같은 거울이 나온뒤 동경이나 석경보다 훨씬 더 잘 비치는 밝은 거울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명경의 출현과 대중화는 근대사회의 생활상에 큰 변화의 획을 그었다.
지금은 흔한 게 거울이다. 웬만한 덴 안 걸린 데가 없다. 도처에 걸려 있는 것이 거울이다. 집에도 방마다 거의 거울이 걸려있다. 집집마다 이렇다.
거울을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걸려있는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절로 비치는 것을 보곤한다. 개인 얘길해서 미안한데 나는 거울을 피해왔다. 절로 비쳐도 외면했다. 거울에 보이는 내 얼굴이 내가 보아도 싫었기 때문이다.
젊었을 적이라고 잘 생긴 것은 아니지만 젊어서는 젊음 자체가 광채를 뿜기 때문에 그런대로 보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할아버지’ 소릴 듣게 되면서는 더 볼품이 없게 됐다. 내가 거울을 봐도 내 모습에 화가 날 지경이다.
한 번은 어느 지인(知人)에게 이런 심경을 털어놨더니 깜짝 놀라면서 “무슨 망발이냐!”는 것이다. 평생 살아온 얼굴을 이제 와서 거부하면 살아온 지난 평생을 부정하는 것이라면서, 자신의 얼굴에 대해 오히려 고맙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인의 말에 나는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나처럼 잘못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또 없지 않았을 것 같아 하는 얘기다. 나는 이제 명경을 보는데 전처럼 겁을 안 낸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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