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태평로 1가에 위치한 ‘서울광장’이 현재의 잔디광장으로 조성된 것은 2004년 5월이다. 총면적 1만3천207㎡로 대청마루에 뜬 보름달을 연상케 하는 타원형으로 만들어졌다. 이전엔 1963년 조성된 대형분수가 있는 도로광장이었다.
서울광장의 역사는 대한제국 황제인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가 월산대군 개인 집이었던 덕수궁으로 돌아온 1897년부터 시작된다. 고종은 나라의 기틀을 새로이 하기 위해 덕수궁 대한문 앞을 중심으로 하는 방사선형 도로를 닦고 앞쪽에는 광장과 원구단을 설치했다. 이 때부터 대한문 앞 광장은 고종보호 시위, 3·1운동, 4·19혁명, 한일회담 반대시위, 6월 항쟁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요무대가 됐다. 1987년 6월 전두환 정권에 맞서 독재 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다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노제가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그 힘이 6월항쟁의 물결로 이어졌고 민주화라는 결실을 맺었다.
서울광장이 잔디광장으로 변모하게 된 동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경기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월드컵 거리응원 열기를 간직하고 시민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겠다며 서울시청 앞에 잔디밭 광장을 조성했다. 교통난을 우려한 반대여론이 거세게 일기도 했지만 이명박 시장의 강한 의지에 따라 광장 조성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이 시장은 공사 완공에 맞춰 광장 한편에 세운 ‘서울광장을 열며’라는 제목의 동판에 “(전략) 8·15 광복과 산업화, 민주화, 월드컵에 이르는 우리 겨레의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이곳이 통일의 환호로 가득하기를 기원하면서 2004년 5월1일 대한민국 영원한 수도 서울의 중심에 서울광장을 만들어 시민에게 바칩니다”라고 새겼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탄핵되자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서울광장 거리로 나와 탄핵반대를 외치기도 했다. 지난해 5월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서울광장을 중심으로 열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노제가 5월29일 서울광장에서 있었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시절 조성한 서울광장이 지금은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잇단 정치 집회 및 시위장으로 바뀌었다. 대통령 자신이 개방에 앞장섰던 서울광장을 이제는 스스로 닫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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