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서울 장충공원에서 10만 청중에게 민주화의 사자후를 뿜어 박정희 대통령의 간담을 서늘케 한 것이 1971년이다. 그후 일본으로 망명, 괴한에게 납치돼 배로 현해탄을 건너 오면서 수장될뻔 했던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겼다. 전두환 정권에서 사형선고를 받는 등 민주화의 역정에 그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도 누렸다. 국회의원 5선에 평민당, 새천년국민회의 총재를 지냈다. 제15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재산도 축재했다. 그가 야당 총재 시절에 누구 집 웃방에 싸아둔 DJ 돈더미 돈냄새 때문에 집주인이 머리가 아팠다는 것은 알려진 얘기다.
김영삼(YS)과의 관계는 DJ가 정치에 입문한 신민당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다. YS와 DJ는 민주화의 두 거목으로 정적이면서도 친구 사이다. DJ가 15대 대선에서 당선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YS가 있었다는 숨겨진 비화가 있다. YS가 이따금씩 DJ를 호되게 공격해도 DJ가 아무 소리 않는 것은 비화에 얽힌 약조를 깬 실신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노무현을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이 DJ인 것이다.
DJ는 YS가 대통령일 때 YS 둘째 아들이 모종의 비리가 연루된 사건을 두고 “대통령 아들을 구속시켜야 한다”고 맨 먼저 목소릴 높였다. 아무리 정적이지만, 친구의 아들을 그렇게 말한 것은 너무 심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랬던 자신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세 아들이 모두 비리에 얽혀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DJ가 요즘 바짝 대정부 공격을 일삼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독재정권”이라면서 “국민의 행동을 촉구한다”고 민중 봉기를 선동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전생에 형제였던 것 같다”며 지난 국민장에서 보인 추모 민심을 자극한다. DJ의 이 같은 선동은 현 정부가 자신의 햇볕정책을 따르지 않는데 대한 반감이 극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독재정권이라는 것은 터무니 없는 망발이다. 누구보다 권위주의 의식에 가득찬 사람이 바로 DJ 그 자신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무려 5억달러를 진상하고 평양 방문을 허용 받은 소산이다. ‘송금사건’ 때문에 측근인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만 옥고를 치렀다. 햇볕정책은 후세에 역사가 평가할 일이다. DJ가 원로라면, 원로다운 신중한 처신이 요구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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