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

어느 택시 기사의 얘기다. “글쎄, 반나절이 되도록 5만원을 못벌었는 데, 기본요금에 5만원짜릴 덜렁 내는 손님이 있잖아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거스럼 돈이 없어 요금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날품꾼들도 하는 말이 있다. 진종일 품 팔아 삯을 받으면 돈을 세는 맛이 있어야지, 달랑(5만원짜리) 한 두장 쥐면 금액은 같을지라도 허망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5만원짜리 고액권이 나온지 일주일이 다 된다. 유통 첫날인 지난 23일 은행 창구엔 새로 나온 고액권으로 돈을 바꾸려는 고객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고액권을 바꾸기는 고사하고 만져도 못 본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희한한 것은 고액권 유통 직후 도둑이 부쩍 늘었단 사실이다. 더러 집 장롱에 비상금으로 놔둔 돈을 고액권으로 바꾸는 것이 아무래도 편할 것 같아 바꿔둔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됐다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도둑협회에서 틈을 노린 것 같다”며 농조로 말문을 연 어느 피해자는 자신만이 아니고, 주변의 아는 사람들 중에도 피해자가 적잖다고 말했다.

고액권을 노린 도난 사례는 집 열쇠를 바꾸는 사람들이 갑자기 는 것으로도 많을 것으로 보는 짐작이 간다. 이 며칠 들어 도둑 때문이라면서 열쇠를 바꾸는 손님이 심심찮게 찾는다는 것은 한 열쇠상의 말이다.

5만원짜리 새 돈이 생김으로써 10만원짜리 수표 발행에 드는 비용이 절감된다고 한다. 경제규모에 걸맞는 유통 편의가 증대 된다고도 한다. 하지만 서민들은 돈이 헤퍼질 것을 걱정한다. 그러잖아도 인플레이션의 요인이 없지않은 판에 고액권 유통이 물가 상승을 더 부채질 할까봐 걱정인 것이다.

이런 익살꾼도 있다. 그간 보아온 지금까지의 뇌물 거래에서 사과상가 하나면 만원짜리 돈이 1억원 들어가는 것으로 아는 것이 통상적 인식이다. 그런데 이제 사과상자 하나에 5억원이 들어가게 됐으니, 뇌물 단가가 5배로 뛰게 됐다는 것이다.

모든 일엔 순기능과 역기능이 다 있다. 경제를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지 5만원짜리 돈인 것은 아니다. 고액권의 역기능 보단 순기능을 살려 서민들이 잘 살 수 있는 경제가 되면 좋겠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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