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보편적 표현 가운데 사거(死去)가 있다. 죽어서 세상을 떴다는 것이다. 종교적으로는 사거의 높임말을 불교에선 열반(涅槃) 구교는 선종(善終) 신교에서는 소천(召天)이라고 한다.
일상의 높임말로는 타계(他界) 별세(別世)가 있다. 잘 쓰진 않지만 같은 뜻의 기세(棄世) 하세(下世)란 말도 있다.
임금이나 황제의 죽음엔 표현이 많다. 승하(昇遐) 붕어(崩御)는 아는 말이다. 이외에도 예척(禮陟) 척방(陟防) 선어(仙馭) 안가(晏駕) 빈천(賓天) 등이 있다. 거의가 하늘에 오른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용어는 지금은 쓰지 않는 시대다.
현대적 사거의 최고 존칭은 서거(逝去)다. 이렇긴 해도 타계나 별세보다 뜻이 크게 다른 건 아니다. 국어대사전은 타계는 ‘귀인의 죽음에’ 별세는 ‘웃사람의 죽음에’ 라고 풀이해놨다. 아울러 서거는 ‘사거의 높임말’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타계·별세·서거가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상의 관념으로는 서거가 타계나 별세보다 훨씬 높은 존칭으로 쓰인다. 국어대사전의 풀이가 틀리지 않았다면 아마 관습일 것이다.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십구제가 지난 11일 봉하마을 인근의 정토원에서 있었다. 안장과 함께 마을에 ‘아주 조그만한 비석’도 세워졌다. 송기인 신부는 고인의 정신적 스승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그의 말이 생각난다. “(비판에서 지지로 반전된 죽음의 전환에 대해) 동정이겠지요. 죽었다는 그 점을 놓고 정치적 지지라고 볼 수 있을까요. 죽고 보니까 그래도 소통할 수 있는 대통령이라고 본 겁니다. 소탈한 어투로 친구처럼 소통했던 최초의 대통령이었지요”라고 했다. 그는 이어 “과도한 의미 부여도 좋은 현상이 아니라고 봐요. 죽음을 과도하게 활용하는 측, 그런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민주당은 실리를 취하려고만 해선 곤란해요. 한나라당도 양보할 수 없다는 거지만”이라고 말했다.
사십구제는 이승을 떠난 영가(靈駕)의 후생안락을 위하여 공양독경으로 명복을 발원하는 제(齊)다. 그런데도 이른바 ‘서거정국’의 불씨를 되살리지 못해 부리는 민주당의 안달은 영가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미 떠난 분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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