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생일파티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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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어린 아들, 딸이 생일을 맞이하면 부모가 ‘작은 잔치’를 마련했다. 아침에는 쌀밥과 미역국, 생선 반찬으로 밥상을 차렸고, 점심 땐 특별외식으로 주로 자장면을 사 먹였다. 형편이 조금 좋으면 새옷이나 새신발을 사주어 생일 맞은 자녀를 기쁘게 했다.

언제부턴가는 초등학생들도 생일을 맞이하면 가까운 친구들을 초대하는 게 관례가 됐다. 부모가 피자나, 통닭, 과자, 과일, 음료수 등을 대접하면 초대받은 아이들은 미리 마련해온 학용품이나 인형 등 선물을 내놨다. 이런 생일 초대는 제법 살 만한 가정에서나 가능했다.

그런데 요즘 부유층의 어린이 생일잔치는 초호화판으로 바뀌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해외여행 바람이 불면서 여행, 연수, 유학 등으로 미국 문화를 경험한 중·상류층이 국내로 들어와 자녀의 생일파티를 미국식으로 챙기게 되면서부터다. 예컨대 서울의 소위 부자 동네 사람들이 선호하는 어린이 생일파티 장소는 특급호텔이나 상류층 전용클럽, 고급 레스토랑 등이다. 50평대 이상의 대형 아파트 거주자는 전문 파티 플래너(기획자)와 케이터링(출장 연회업) 서비스 등을 이용해 자녀의 생일파티를 해 준다.

다른 아이들과 차별화를 위해 개인 별장으로 자녀와 같은 반 아이들을 전부 불러 파티를 열거나 전세버스로 펜션 등으로 데려가 1박2일로 생일파티 겸 야외 체험학습을 시켜 주는 부모도 있다.

문제는 중산층이나 서민층에도 이런 문화가 퍼져 나가면서 수입이 넉넉지 못한 서민 부모들의 부담이 만만치 않은 점이다. 누구는 생일파티를 호텔에서 했고, 누구는 별장에 반 친구들 모두를 초대했다고 부러운 듯이 말하는 자녀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 생일파티가 집안 기둥을 뽑고, 생일파티 해주려고 적금까지 들어야 할 판이 됐다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어린이 호화 생일파티는 어른들의 과시욕에서 나온 것이지 아이들이 원해서라곤 할 수 없다. 하지만 부모가 돈을 물 쓰듯 하는 것을 보고 어린이들이 배울 건 사치와 낭비 풍조일 게 뻔하다. 그런 생일파티를 치르지 못하는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 것도 걱정스럽다. ‘대학 등록금 1천만원’ 시대에 어린이 생일파티로 1천만원을 쓰는 일부 부유층의 과시는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 해도 정상적이 아니다. 반사회적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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