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한여름 염제가 맹위를 떨친다. 어제도 수은주가 33℃로 치솟았다. 길을 걷노라면 비지땀이 빗물을 맞은 것처럼 쏟아진다.

더울 때다. 온난화 현상을 말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예전에도 이맘 때면 폭염의 위세가 대단했다. 꽁보리밥에 감자국으로 점심을 마친 농부들이 동네 정자나무 그늘에서 한잠 늘어지게 자곤 했다. 한낮 더위를 피해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한여름 폭염은 들녘의 오곡백과의 성장을 재촉한다. 벼는 논물에 발을 담그면 뜨거울 정도로 쩔쩔 끓어야 무럭무럭 자란다. 추울 땐 추워야 하고, 더울 땐 더워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요즘 사람들이 더위를 잘 참지 못하는 것은 성질머리 탓이다. 더위에 짜증을 내면 더 덥다. 더위와 싸워선 이길 수 없다. 더위를 피해 피서를 간다지만, 피서길이 더 더운 고행길이 되기 십상이다. 피서를 가든 가지 않든, 더위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 가장 좋은 피서법이다. 더위를 탓하지 않는 건 친환경적 삶이다.

하긴, 요즘 사람들은 좀처럼 맨땅을 밟기가 어렵다. 온통 콘크리트 벽에 갇혀 산다. 집도 그렇고, 나가서 일하는 데도 그렇다. 길바닥은 또 아스팔트 투성이다. 뙤약볕 열기에 단 도시공간이 한증막을 이룬다. 그렇긴 해도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최상의 피서다.

그나저나 이제 한여름 더위도 곧 한풀 꺾인다. 벌써 태풍 ‘모라꼿’의 영향을 받고 있다. 잠을 설치게 하곤 했던 열대야도 이젠 사라진다. 해수욕장도 이번 주말로 파장이다. 8월20일이면 한류가 상승하는 것이 한반도 주변의 조류다.

한여름 더위가 가면 늦더위가 또 있다.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늦더위다. 한여름 더위는 오곡백과를 성장시키고, 오곡백과를 성숙시키는 것은 늦더위다.

내일 모레 13일이면 추분을 앞두는 말복이다. 계절의 변화는 세월의 흐름이다. 무더운 여름철이 가는 것이 좀 아쉬운 것은, 세월의 흐름은 무심하여 너무 빠르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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