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제대화에서 중국의 고전 명구가 많이 등장했었다. 특이한 점은 중국 고전을 인용한 사람들이 중국 측 지도자가 아니라 버럭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미국 장관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맹자(孟子) 중 ‘진심(盡心)’ 하편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산에 난 조그만 오솔길도 갑자기 사람이 모여 이용하기 시작하면 큰 길로 변한다(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그러나 잠시라도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으면 다시 풀로 가득 덮여 길이 없어지고 만다(爲間不用則茅塞之矣).”
사람은 자주 만나야 정이 든다. 왕래가 드물면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도 자주 왕래하고 상호 소통의 큰길을 만들자’는 뜻에서 맹자를 인용했을 터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러나 맹자 원문의 마지막 한 구절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대의 마음은 풀로 뒤덮여 무성하구나(今茅塞子之心矣)!’
해석에 따라 중국이 기분 나빠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 태산도 옮길 수 있다(人心齊 泰山移)’라는 표현으로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손자병법’의 한 구절 ‘비바람이 불어도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무사히 건널 수 있다’는 ‘풍우동주(風雨同舟)’를 중국어로 인용해 중국 지도자들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오늘날은 미국이 혼자서 세계를 끌고 가기엔 버거운 시대다. 중국은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자 미국 기업의 제품을 만드는 생산기지다. 중국 쪽에서도 미국은 중국의 최대 소비시장이다. 중국 인민에게 존경받는 저우언라이(周恩來)는 과거 미국과의 외교에서 ‘구동존이(求同存異)’를 외쳤다. 서로 같은 것을 추구하되 서로 다른 의견은 담아 놓았다가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뜻이다. 서로를 동반자로 인정하고 상호 협력을 해야만 두 나라 모두에 이익이라는 저우언라이의 철학은 이제 현실이 됐다.
서양은 물질이고 동양은 정신이라는 이분법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상대국의 고전을 인용해 이쪽 생각과 의도를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은 상대 문화에 대한 존중의 뜻을 전하는 외교적 수사법이다. 지도자들이 상대국의 고전 몇 구절쯤은 알아야 하는 이유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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