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가요를 들으면 가사는 몰라도 음률은 느낀다. 음률을 통해 가사를 느끼기도 한다. 말은 달라도 음률의 감정은 다 같기 때문이다.
서울에 전차가 다녔을 때다. 정류장을 안내하는 전차 기사의 목소리가 그렇게 다정다감할 수 없었다. “다음 정류장은 서대문입니다…”하면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멘트가 마치 노랫말처럼 들렸다.
행상들이 내는 소리도 그러했다. 장작 같은 나무 땔감을 때던 시절이라, 그을음으로 막힌 굴뚝을 뚫던 굴뚝쟁이가 있었다. 들고 다니는 징을 한 번씩 치면서 “구울뚝!”하는 소리가 무척 청아했다. 채소장수들의 “무우더렁 사려!”하는 외침도 곡조가 있었다. 두부장수가 찰랑찰랑 흔드는 요령 소리만으로도, 여인네들이 알아듣고 사러 나갔다. 아련한 옛적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철역을 안내하는 소리가 뚝배기 깨지는 소리 같다. 행상들이 내는 소리는 완전히 소음이다. 자동차 행상들은 고함 치듯한 소리를 녹음기로 계속 틀어댄다. 짜증스럽다. 안내하는 목소리도, 행상꾼들 외침도 연음으로 가다듬으면 듣기가 좀 좋을 것이다.
길거리 소음은 또 있다. 이따금씩 구급차가 길거리를 질주하며 내는 소리는 가슴을 섬뜩하게 한다. 질주하는 거야 마땅하지만, 웽웽 하는 된소린 행인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구급차일지라도 소린 부드럽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동차 경적 소리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날카로운 소리보단, 듣기에 편한 좋은 소리로 바꿀 필요가 있다. 소릴 알아들으면 되는 것이 경적이다.
현대인들은 생활 양상이 복잡하다. 신경이 예민하다. 이런 데다 길거리 소음을 듣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든다. 유럽의 우화로 이런 게 있다. 백성들이 성질이 급해 싸움질이 잦아 왕이 모든 대화를 노래로 하라고 특명을 내렸다. 이렇다 보니 싸우는 욕설도 노래로 하게 되어 한참 싸우다 보면 서로가 웃음이 절로 나와 백성들이 싸우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길거리 소음 역시 좀 듣기 좋게 바꾸면 사람들 마음이 조금은 여유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 소음은 마음에 자극을 주고, 음률은 마음에 위안을 준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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